최근 들어 미국 하이테크업체들이 TV광고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과거 기업이나 전문가 등 한정된 계층이 주요 고객인 데다 딱딱한 기술적 내용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TV광고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던 하이테크업체들이 PC나 인터넷 이용의 보편화로 이젠 일반인들에게도 보다 적극적으로 제품이나 상표 알리기가 절실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TV를 켜면 IBM이나 컴팩 등의 PC뿐만 아니라 「야후!」의 검색엔진이나 아메리카 온라인의 서비스, US로보틱스의 모뎀, MCI의 전화광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 최근에는 서버나 자바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검색엔진업체 라이코스가 처음으로 TV광고를 개시했고 기업이 주고객인 델컴퓨터도 올 하반기께 TV전파를 타고 안방에 신고할 계획이어서 이러한 업체들의 TV광고 열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은 광고모델로 코미디언이나 가수, 영화배우 등을 내세워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조성함으로써 하이테크 제품이 더이상 전문가영역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하이테크업체들이 TV광고에 쏟아붓는 금액도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이들 업체의 TV광고비는 총 4억9천2백여만달러. 이는 자동차업체들이 매년 50억달러를 지출하는 것에 비하면 10%도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전년보다 23% 늘어난 것이고 지난 94년 총 2억8백만달러보다는 2배가 훨씬 넘는 액수이다.
또 라이벌업체간에는 TV광고에서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지난 95년 첫 TV전파를 탄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자사 온라인서비스인 MSN의 TV광고에 6천1백여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역시 이 시장 1위 업체인 아메리카 온라인도 이에 뒤질세라 6천6백만달러를 광고비로 책정해놓고 있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잡지나 신문 등 인쇄매체에 의존해오던 하이테크업체들이 이렇게 전파매체에 너나없이 뛰어들게 된 것은 하이테크 제품이 이젠 생활필수품 개념으로 자리잡은 데서 연유를 찾을 수 있다.
PC가 가전제품화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인터넷 서비스업체들도 요금 등 비슷한 조건에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 제품도 맥주나 옷, 자동차광고처럼 될수록 자주 그리고 독특한 이미지로 얼마나 시청자들을 사로잡느냐에 승부를 걸고 있다.
또한 수요촉진을 위해서는 TV만큼 영향력있는 매체가 없다는 것도 하이테크업체들을 뛰어들게 한 요인이다.
하이테크의 TV광고 효과는 역시 만족할 만한 것으로 전해졌다.
패커드벨NEC는 광고 전후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지도 변화를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TV광고를 하기 전 「TV에서 본 컴퓨터제품 중 기억나는 브랜드」라는 질문에 패커드벨 제품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8% 정도였던 데 반해 광고가 나간 지 5개월 뒤에는 29%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앞으로 6개월 내 PC구입계획이 있는 소비자 중 패커드벨 제품을 사겠다고 응답한 사람도 광고 전에는 13%였는데 광고가 나간 후에는 24%로 껑충 뛰어 톡톡한 광고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인터넷업체들의 경우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훨씬 빠르게 나타난다. 검색엔진업체인 익사이트는 지난해 10월 1천만달러를 들여 대대적인 TV광고를 펼친 결과 바로 다음날 접속률이 30%나 급증했다고 전했다.
야후!도 마찬가지. 넷스케이프의 검색화면에 떠있는 4개의 검색엔진 중 이용자가 어떤 검색버튼을 누르냐 하는 것은 얼마나 이름을 많이 들어봤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이 업체가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이에 따라 야후!는 일체의 인쇄광고를 하지 않고 TV광고에만 주력하면서 현재 새로운 TV스폿광고를 띄우고 있다.
새로운 광고전략에 눈을 돌리기는 일반인들의 제품선택과 직접적인 상관없는 CPU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인텔 인사이드」 광고로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놓은 인텔은 올 초 슈퍼볼 경기에 하이테크업체로는 이례적으로 2천여만달러를 들여 펜티엄 MMX광고를 내보냈다.
이에 맞서 AMD도 지난 4월 「K6」 프로세서 발표와 함께 대대적인 TV광고로 MMX칩과 정면대결을 공표했다.
업체들의 이러한 추세는 그만큼 하이테크 제품도 소비자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야 살아난다고 하는 생존법칙을 반영한 것이다.
<구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