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이 되면 어느 누구와도 손잡는다」.
최근 몇 년간 세계 전자산업계에서는 적이라도 도움이 되면 손을 잡는 「적과의 동침」이 활발하다. 동일업종의 경쟁업체간 전략적 제휴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전자시장이 무한경쟁시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현실적이며 동시에 단기간내 기업경쟁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대응전략 방안으로 기업간 제휴만한 게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종 업체간 제휴는 당면 목표의 성격상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사업리스크 분담과 표준화 주도권장악,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사업경쟁력 강화 등이다.
물론 이들 세가지 유형 모두 궁극적으로는 세 형성을 통한 기업력 배가와 시장장악 또는 시장확대을 겨냥하고 있다.
먼저 사업리스크 분담을 위한 업체간 제휴는 반도체산업계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최근에는 메모리반도체에서 차세대제품 개발을 둘러싼 업체간 제휴가 국경을 초월해 활발하다.
일례로 올 초 일본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전기 및 미국의 텍서스 인스트루먼트(TI)는 오는 99년 제품화를 목표로 각각 역할을 분담해 1GD램을 공동개발하고 개발기술의 특허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의 제휴 목적은 1천억엔 이상으로 예상되는 개발비를 똑같이 분담해 사업추진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제품화에서 공동보조를 취해 시장 입지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1GD램 개발에서는 이에 앞서 미국 IBM과 일본 도시바 및 독일 지멘스가 손잡았고, NEC의 경우는 미국 루슨트 테크놀로지사와 제휴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차세대 반도체장비 공동개발을 추진하는 것도 리스크 분담의 일환이다. NEC 도시바 후지쯔 등 주요 반도체업체들은 현행 주력인 8인치 웨이퍼보다 수율이 두배 높은 12인치 웨이퍼 사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95년 중순 그에 대응한 장비를 공동개발하기로 했는데, 목적은 역시 약 1천억엔으로 예상되는 소요자금을 분담하는 것이다.
표준규격 장악을 둘러싼 업체간 제휴도 90년대 전자업계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이다. 인텔 MPU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용체계를 결합한 「윈텔」에서 여실히 입증되듯이 일단 표준규격을 쟁취하면 사업성공이 보장된다. 때문에 전자업체면 누구나 경쟁업체와의 제휴도 마다 않고 표준화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를 둘러싼 표준화경쟁.
도시바진영과 소니-필립스 진영을 양축으로 하는 DVD 표준화경쟁은 줄곧 세싸움 양상을 보였다. 그 결과 외형상으로는 두 진영의 기술이 통합되는 형태였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도시바진영이 핵심기술을 거의 통일규격안에 반영시켜 내용면에서 우세승을 거뒀다.
그러나 규격통일 과정에서 사실 소니진영도 크게 손해본 것은 없다. 어쨌든 자신들이 내세운 DVD가 표준화경쟁을 통해 단숨에 차세대 기록장치의 주역으로 급부상, 시장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예상 대로 DVD가 거대 시장을 형성하면 막대한 라이센스료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업체간 제휴도 활발하다. 특히 시장변화가 급격한 통신분야에서 이같은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지난해부터 미국과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통신분야의 기업간 제휴 움직임은 업체간 합병까지 겹치고, 지역도 아시아, 중남미 등 전세계로 확산되며 세계통신산업계의 재편으로까지 발전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세계통신시장의 경쟁구도는 AT&T, MCI커뮤니케이션스, 스프린트 등 미국의 장거리통신사업자를 중심으로 하는 3강과 나머지 세력들로 재편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3강은 AT&T를 중심으로 하는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스페인 등 4개국 통신사업자 연합, MCI와 영국 브리티시텔리컴(BT)연합, 스프린트와 도이치텔리컴(DT) 및 프랑스텔리컴(FT)연합 등이다.
이들의 제휴 목적은 세계 어느 지역이든 단절없이 연결하는 서비스 체제를 갖춰 국경의 의미가 사라진 통신시장의 무한경쟁시대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이들의 제휴작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세계 통신시장에서 경쟁이 계속되는 한 합종연횡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