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71)

다시 눈을 감았다.

말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앞발을 든 채 점액질을 줄줄 흘려대며 다가드는 말 한 마리. 혜경의 온 신경이 사타구니 쪽으로 몰려들었다.

혜경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환철. 재즈. 촛불. 그리고 이제 꺼져드는 맨홀이 불.

암말의 등뒤로 올라탄 수컷이 허리 운동을 시작했다.

큰 율동이었다.

꼬리를 파도처럼 나부끼며, 갈기를 곧추세우고 암말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힝 힝 힝.

수컷은 하늘을 향해 길고 큰 소리를 질러댔다.

음과 양의 대화합.

『성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 말들을 보십시오. 완전한 아름다움입니다. 종족 보존이라는 대자연의 섭리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저 모습은 자연 그 자체이며, 아름다움의 극치입니다.』

수컷이 암말의 등뒤로 올라타 큰 허리 운동을 해댈 때 얄궂은 미소를 띠고, 말과 다른 동물들의 사랑 행위까지도 장황하게 설명해 주던 종마장 안내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동물에게는 성이 조금도 신비로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동물들을 구속하는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놀랍거나 비열하다거나 부자연스런 행위가 아닙니다. 자기네 일상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행하는 모든 육체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매우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동물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성생활의 발단이자 주인공적인 확실한 본능에 지배받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자연계의 논리에는 비난의 여지가 없습니다.

만일 모든 생물에 대한 자연의 첫째 기능이 그 종족들을 영속시키는 것이고, 또 성생활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한다면 성생활은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쾌락을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반드시 행해 져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은 자연의 명령은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에 의하여 지켜지며, 특유한 종인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혜경은 수컷이 암컷의 등뒤에서 거대한 허리 운동을 해대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몸이 달아올랐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환철이란 사내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혜경은 절정의 순간마다 말의 교접 광경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 광경이 떠올라 환철을 찾은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