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자산업 "전천후 성장전략"

그동안 고속 성장해 온 국내 전자산업이 국제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경제 전반에 걸쳐 누적된 저효율, 고비용 구조를 혁파하지 못한 탓이다.

이같은 국내 전자산업의 경쟁력 저하에 따른 저성장 현상은 전자산업진흥회가 영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이 발표한 「97세계 전자시장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지난해 2.4%의 성장에 그쳐 경쟁국인 싱가포르(7.2%) 대만(7.8%)은 물론이고 미국(4.7%) 일본(5.7%) 등에도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올해 성장률도 말레이시아, 태국 등 개도국의 10%에 비해 2,3%포인트 낮을 것으로 예상돼 국내 전자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생산액 기준으로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5백6억달러를 기록해 미국 2천9백85억달러, 일본 2천8백24억달러, 독일 5백24억달러에 이어 4위로 전년수준을 유지해 그나마 위안이다.

우리나라 전자산업 성장이 지난해 경쟁국인 싱가포르, 대만보다 낮은 것은 고비용 생산여건에 따라 생산품목을 기술집약품목 중심으로 고도화하지 못해 빚어진 현상으로 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산업용 전자분야의 집중적인 개발과 규제완화를 통한 생산구조의 효율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자산업 경쟁력 약화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투입요소들의 적정화와 안정화를 위한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자산업의 적정 성장력 복원은 고효율 산업구조로 전환할 수 있는 창조적 기술혁신 능력의 향상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들어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본격 가동으로 산업 전분야에 대한 시장개방이 확대되고 있고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부상한 첨단 전략기술을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일부 선진국들이 90% 이상 독점하는 등 국제 판도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전자산업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려면 시장개방체제 아래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입체적 산업정책을 밀도있게 추진해야 한다.

전자산업은 급속한 기술전이로 인해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져 기술 및 시장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기술변화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1차적인 관건이다. 우리나라는 기술개발 시간보다는 정책결정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상품 생산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대만만 해도 미, 일 등 선진국에서 신기종, 신기술이 발표된 후 6개월 안에 동등한 성능을 지니거나 개량된 제품을 개발한다. 여기에 세계시장을 겨냥한 마케팅력도 우리보다 앞서 판매면에서 비교우위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띠라서 국내 전자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차원에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먼저 산업전자부문의 기술고도화를 위한 전문기술연구소 설립이 시급하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해 그들만의 강점을 살리고 있는 대만의 전자공업연구소(ERSO)가 한 모델이 될 수 있다.

국제시장 개척을 위한 지원체제도 대폭 강화돼야 한다. 특히 신기술, 신개념을 도입한 제품을 출시할 경우 외국 경쟁업체에 대한 개발정보와 시장정보를 초기에 얼마나 민첩하게 확보하는지 여부가 사업성패와 직결된다. 중소기업이 개발하기 어려운 기술개발은 물론 공통 애로사항인 시장개척, 해외전시회 지원 등도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이다.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대학의 전자관련 인원을 대폭 확대해 산업 일선의 심각한 인력난을 해소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는 대외경제 환경에 의존하는 80년대식 성장전략으로는 전자산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전천후 성장전략을 개발하지 않는 한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개도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