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니의 선택

종신고용제가 기업의 대표적 특성이던 일본에서 요즘 미국식 경영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 소니가 일본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경영과 집행을 분리한 미국형 이사회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38명에 달하는 이사진을 10명으로 줄이는 등 이사회 체질 개선을 단행하고 이달 27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기업의 이사 역할이란 원래 기업 전체의 방향을 잡고 경영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부장 다음 자리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으며 각 부문을 대표하는 실무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조직은 자연히 무거워져 급변하는 국제 경쟁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니가 「디지털 제국」 건설에 앞서 이사회에 칼을 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여기에다 일본 정부 또한 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55년만에 처음으로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한 독점금지법 개정안과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높인 日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후 일본경제를 지탱해온 양대 법안에 칼질을 한 것이다. 일본판 「빅뱅」을 포함한 경제구조 개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글로벌 체제를 서두르는 기업체에 정부가 실탄을 제공한 셈이다.

최근 엔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환율이 1백엔에 8백원까지 진입하자 벌써부터 국내 기업의 수출이 활성화될 것이라 성급한 기대에 빠져 있다. 갑작스런 엔高로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일본기업들은 정부와 공동으로 구조조정을 착실히 실천하고 있다. 엔고로 국내업체의 對日 수출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경제가 정치 논리에 휘말려 불황의 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은 국제경쟁력 제고에 진력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구호로는 일본 못지않게 국제경쟁력을 외쳐 온 것이 사실이다. 문민정부 출범 당시부터 줄기차게 내세웠던 것이 국제화와 세계화였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우리의 경제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의 간극이 너무 크게 벌어져 있어 「세계화」란 절대절명의 과제를 산업과 기업에 적용하는 전략개발과 실천 의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국내 기업 환경은 지금 한창 구조 조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한 조사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2백33개 기업 중 97.4%가 향후 5년간 사업구조조정을 벌이겠다고 응답했다.

정부측에서도 모처럼 기업 해외투자지침을 개정해 기업 경쟁력 제고에 물꼬를 텄다. 재경원은 오는 8월1일부터 자기자금 없이도 해외투자에 나설 수 있고 또 주거래은행의 동의가 있으면 금액제한까지 폐지하는 등 외국환-해외 투자지침을 개정, 시행키로 했다. 업체의 글로벌경영을 막아온 족쇄를 일부 푼 셈이다. 국제경쟁력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기업체들로서는 모처럼 맞은 단비다. 이같은 기업의 의지와 정부의 지원이 꾸준히 지속되어 국내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사상 최대의 호황을 겪고 있고 또 이 호황이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지속될 것이라는 장밋빛 경제전망 속에 미국 정부는 자국산 스팅어 및 패트리어트 미사일 판매를 위한 구매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니를 비롯한 주요 일본 기업들은 디지털 제국을 꿈꾸고 뼈를 깎는 경영진 수술에 나서고 있으며 일본 정부도 이들 업체를 뒷받침하기 위해 각종 제도개혁과 규제 해제에 전념하고 있다.

우리도 경제제국주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세계 업체들의 공격일변도 전략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지금 여기서 밀리면 더이상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