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산 컬러TV에 대해 부당한 반덤핑조치로 규제를 하고 있는 미국을 다음달중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다. 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의 한국산 D램에 대한 반덤핑조치에 대해서도 다음 달 16일로 예정된 미국의 확정판정에서 국내 업계의 철회신청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경우 WTO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지난 95년 WTO체제 출범 이후 WTO에 피소만돼 온 우리나라가 외국 정부의 불공정 행위를 이 기구에 제소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첫 제소상대가 우리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며 각종 분야에서 통상마찰을 빚거나 갈등조짐을 보이고 있는 미국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결과가 주목된다.
정부의 제소대상 1호는 미국이 삼성전자의 컬러TV에 대해 뚜렷한 이유없이 13년동안 반덤핑 규제를 해온 행위로 이것이 WTO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는것이다. 문제가 된 제품은 미국의 연례재심에서 85년부터 91년까지 6년동안 미국내 산업에 피해를 거의 주지 않는다는 「미소마진(0.5% 이하) 판정」을 받았고 91년 이후부턴 직수출까지 중단된 품목이다. 특히 해당업체인 삼성이 그동안 반덤핑조치 철회신청을 수차례했으나 미국측은 오히려 멕시코 현지공장 제품이 「우회덤핑」에 해당한다며 WTO협정에도 없는 조사를 개시하고 이에 대한 판정도 정당한 이유없이 1년을 넘기며 끌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정부가 이 문제를 WTO에 제소키로 한 바 있으나 미국이 삼성의 재심요청을 받아들여 해결의지를 보이는 것 같아 지금까지 제소를 유보해 온 사항이다.
미국의 불공정 행위를 제소키로 한 우리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하여 우리는 일차적으로 지금까지의 수동적 대응에서 적극적인 공격형으로 바꾸지 않을수 없게 된 데 대해 공감하면서 이같은 정부의 방침 전환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선진국들, 특히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엄청난 강도의 통상압력을 받아오고 있다. 정부와 업계가 자발적으로 마찰 소지를 없애기 위해 눈에 두드러지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이들은 여전히 연례행사처럼 통상압력을 행사하거나 다분히 위협적인 예고까지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해마다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감수하고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독선적이고 고압적인 통상압력은 더 이상 수동적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며 이같은 국민감정도 정부가 읽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최근 통산부가 발간한 「각국별 무역 투자장벽 사례집」을 보면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당하고 있는 불공정 사례 는 모두 53개국에서 2백2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 각국들이 우리 기업들에 행하는 불공정한 무역장벽들과 불합리하고 폐쇄적인 각종 관행과 제도들도 대단히 많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5월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미국에 한국산 D램의 반덤핑조치 철회를 요청한 데 대해 지난 3월 덤핑 재발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기각하는 등 명확한 증거도 없이 향후 덤핑이 예상된다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논리만으로 규제조치를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물론 WTO 등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선진국들의 부도덕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동안 외국으로부터 당하는 제소에 대해서만 대응하고 우리에게 불공정한 피해를 입히는 사례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았던 소극적인 통상정책에서 빚어진 결과임에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이번에 통상정책 자세를 공격적으로 전환한 것은 높게 평가되는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은 반덤핑조치나 높은 관세, 쿼터제 등 유형 무형의 수입장벽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각국의 무역장벽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 연례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라별로 시정을 강력 촉구하는 공격적인 통상외교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현재 외무부, 통상산업부, 재정경제원 등으로 분산돼 있는 통상업무의 조정도 검토할 때다. 갈수록 효율적이고 강력한 통상기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우리를 WTO에 제소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겁낼 필요가 없다. 상대국이 제소한다고 하면 논리 개발이나 대응책 마련에 앞서 걱정부터 하는 당국의 약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새 무역질서인 WTO체제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