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과 전망
광동축혼합방식(HFC)의 케이블TV망이 쌍방향 멀티미디어 통신에 적합한가라는 기술적 논쟁은 끝이 없다.
한국통신의 HFC불가론과 한국전력의 HFC우위론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논쟁이 계속될수록 한국통신은 1백년 통신 노하우의 「권위」가 훼손되고 있는 데 대해 언짢은 표정이 역력하지만 한국전력은 『우리에게도 기회를 달라』며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다.
하지만 기술적인 가, 불가론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기술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면에는 초고속정보통신기반 구축계획, 통합방송법 등 통신, 방송 정책 전반에 걸친 부처간의 갈등과 공기업간의 밥그릇 싸움이 바로 논쟁의 핵심이다. 한전이 HFC망이 곧 초고속망이라는 주장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힌 적은 없다. 단지 케이블TV망도 초고속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정통부가 인정하고 케이블TV망 구축사업자들을 정부 전략사업인 초고속망구축사업자로 대우해 각종 금융,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명하고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HFC망이 초고속망이라는 것을 정통부가 인정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함으로써 공기업인 한전이 국가전략사업인 초고속망구축사업에 기여하고 있음을 「공인」받고 이를 바탕으로 「전화가입자」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통신사업자의 지위를 획득하겠다는 것이 한전의 전략이다.
사실 45조원에 달하는 초고속정보통신기반 구축비용 가운데 엄밀히 말해 정부예산은 3조원이 채 되지 않는 초고속국가정보통신망 구축부문에 불과하다. 즉 32조원이 투입될 가입자망 구축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해서 정부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가입자망은 비록 초고속정보통신망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다 해도 통신사업자들이 자사 서비스의 품질제고를 위한 투자액이다.
한국통신의 초고속공중정보통신망 구축계획이라는 것도 한 꺼풀 벗겨보면 전화사업자로서의 설비투자계획인 셈이다.
따라서 제2시내전화사업자인 하나로통신, 제3시외 및 국제전화사업자인 온세통신 등 전화사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한전이 이들 통신사업자들의 전화가입자망으로 HFC망을 활용하든 말든 제3자가 왈가왈부할 사항은 아니다. 제도적인 장벽도 이미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해도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정보화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바람직한 투자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정부의 몫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공기업의 역할에 관한 논쟁도 치열하다. 『전력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투자기관이 본래의 설립목적과 다르게 기간통신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기존 정부투자기관인 한국통신과의 경쟁을 유도하게 돼 불합리하며 경제력 집중방지를 위한 정책기조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통부의 공식입장이다.
그러나 재경원은 『국내 공기업의 통신사업 참여를 민간 및 외국인보다도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공기업의 통신사업 지분소유한도가 완화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의 김정부 정보통신본부장은 『개발도상국 시절의 공기업 개념에 매여 있는 한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며 『한전은 전기는 물론 통신, 가스, 방송 등을 통합 제공하는 종합 유틸리티 사업자로 발전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 본부장은 더 나아가 『정부가 아무리 통제하려고 해도 3~4년 내에 소비자들이 이같은 종합 유틸리티 서비스를 요구하는 시대가 온다』며 『한전은 이같은 시대에 대비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통신은 한전의 통신사업 진출 봉쇄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통신의 한 관계자는 『초고속정보화의 시대에도 모든 국민의 통신복지를 실현할 보편적 통신서비스 제공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한국의 통신복지를 책임질 회사는 한국통신』이라고 항변했다.
한국통신과 한전간의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통신정책은 물론 방송정책까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의 정책적인 조정은 이미 물건너간 셈이다. 논란을 불식시키고 이를 해결할만한 공감대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통신과 방송의구분이 없어지는 범세계적인 미디어 전쟁 시대에 통신과 방송정책을 관장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책 부서가 양립하는 한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최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