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이동통신 서비스가 러시아에서도 새로운 통신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요즘 러시아에서는 희귀한 법정싸움이 한 건 벌어지고 있다. 이동통신 서비스 가운데 페이저(PAGER)에 독점적인 상표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소송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92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장 경제로 전환하면서 러시아에도 세계 각국에서 인기있는 신종 통신사업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페이저 서비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비즈니스 맨들과 금융업자들 사이에 순식간에 인기가 올라가 알파콤, AMT, 모빌익스프레스, 모빌텔레컴, 멀티커뮤니케이션, 라디오페이지, 메소링크 등 이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전부 진출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기업이 자사의 제품 광고에 페이저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문구를 일절 사용할 수 없어 곤란을 겪어 온 것이다. 이유는 92년 초 모스크바 특허사무소(주)라는 한 개인 기업이 일찌감치 러시아 특허청으로부터 자사의 「페이저」 서비스에 대해 상표 특허를 받아 독점적으로 이 상표를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급기야는 지난해 10월말 이 분야의 두 기업이 특허 및 상표권 분쟁을 다루는 러시아 행정부 산하의 청원위원회에 특허청의 결정을 재심해 달라는 청원을 했다.
최근 이에 대한 심판결과가 나왔으며 재심결과 1라운드의 승리는 청원을 한 멀티커뮤니케이션사와 라디오페이지사에 돌아갔다.
그러나 경제 분쟁과 특허문제에 능한 변호사를 다수 확보하고 있는 모스크바 특허사무소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 회사는 러시아 청원위원회의 시판에 불복 성명서를 내고 이른 시일 안에 모스크바 지방 조정법원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상표권을 둘러싸고 제2 라운드의 싸움이 붙은 상태이다. 이 회사는 이미 작성한 소장에서 『페이저 상표권은 특허청의 앞선 결정대로 모스크바 특허사무소에 독점적으로 귀속되며 이 분야에 진출했거나 앞으로 진출할 다른 기업들은 페이저 서비스 사업 대신에 「이동이 가능한 개인용 통신 수신기 사업」이라는 의미의 PPPS라는 문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소송이유를 공표하고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 특허사무소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PPPS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누가 페이저 서비스를 이동통신인 줄 알고 가입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미 「페이저」라는 용어가 세계적으로 보통 명사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데 왜 러시아에서만 이 용어가 한 기업의 독자적인 상품인 양 취급돼야 하느냐고 이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결국 페이저 서비스에 대한 상표권 등록이 한 기업에 독점적인 용어 사용권을 부여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는 조정법원의 재판 결과가 나와봐야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송에서 피고가 될 두 외국기업 외에 다른 외국업체들은 이 싸움에 속으로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시치미를 떼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섣불리 싸움판에 뛰어들어 소란을 피우고 소송 비용을 날리느니보다는 굿판을 지켜보다가 떡만 챙기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여하튼 다툼은 장기전으로 접어들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