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오 선장이 떠난 애플호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지난 9일 애플의 길버트 아멜리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계속되는 재정난과 사업부진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것을 계기로 향후 애플의 운명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던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면서 일약 「부실기업의 해결사」 「경영의 귀재」란 명성을 얻게 된 아멜리오 회장의 처방도 애플의 고질적인 상처를 치료하는 덴 별로 먹혀 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애플을 살릴 수 있다』 『곧 정상화시킬 것이다』라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생전략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자사 회계연도 2, 4분기(3월말 마감) 경영실적에서 자명히 드러났다.
제품공급 제때 안돼 1분기 1억2천만 달러의 적자에 이어 애플은 이 기간에도 7억8백만 달러라는 적자를 낸 것이다. 물론 지난해말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사 인수비용이 포함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눈물나는 감량경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 온 애플로서는 치명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아멜리오 회장이 흑자를 낼 것이라고 예상한 3분기에마저도 1억 달러 적자를 기록함으로써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게 됐다.
그러나 이보다 지난 며칠 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그의 사임에 결정타가 됐다는 분석이다.
즉, 교육용시장에서 최대의 매킨토시 공급업체인 에듀케이션 액세스가 애플과의 관계를 끊고 대신 IBM, 컴팩 등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이는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마저도 윈텔시스템에 밀려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대 매킨토시 호환업체인 파워 컴퓨팅社가 윈텔 컴퓨터 생산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업을 공개한 것이 애플로서는 결정적 충격이었다. 호환업체들이 자사의 시장점유율을 조금씩 갉아 먹자 이에 위기를 느껴 매킨토시 라이선스 계약에 소극적이었던 점이 등을 돌리게 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플이 제품을 제때 공급할 수 있기는 만무다.
주문한 제품을 몇 달씩 기다려야 되는 것은 보통이고 지난 봄에 발표한 전략제품 2백㎒ 「파워매킨토시 8600」도 아직 충분히 출시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사진이나 주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도 당연한 일. 결국 아멜리오 회장은 이들의 사퇴압력에 더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됐다.
일부에서는 지난 17개월 동안 아멜리오 회장이 추진해 왔던 의욕적인 작업을 인정하기도 한다. 인원감축을 비롯한 과감한 비용절감 노력이나 불필요한 제품라인의 정비, 수익성 없는 사업의 분리 등 방만했던 경영에 칼을 댄 것은 점수를 줄 만하다는 것이다.
아멜리오 회장 자신도 이 상황에서 불명예 퇴직을 당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억울하고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아무튼 현재 애플에 대해서는 차기 회장이 누가 될 것이냐 하는 것과 애플호가 제대로 항해를 해 나갈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넥스트와의 합병을 계기로 애플에 다시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 향후 애플 진로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아멜리오 회장의 기술자문역이었던 잡스가 그동안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 나가면서 제품 개발에서부터 마케팅, 판매, 기업 제휴에 이르기까지 사업전반에 걸친 「전략 고문」으로 입지를 강화시켜 왔다는 사실이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점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시장전문가들은 누가 되든 새로 취임하는 회장은 애플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즉 고객, 주주, 직원, 소프트웨어 개발협력업체 할 것 없이 애플에 대해 믿을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아멜리오 회장은 이 점에서 실패했으며 이것이 결국 패배를 불러 왔다는 분석이다.
기업구조 개편 시급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에게 애플이 변하지 않는 장기적인 제품 개발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신케 하고 △주문에 따른 공급약속을 잘 지키며 △기업구조를 개편하고 △기술적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제품 공급의 지연은 애플이 그동안 고객을 잃어 왔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어 고객 및 협력업체들에 대한 약속 이행은 앞으로 애플이 이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느냐 못하느냐의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수많은 애플 지지자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후임자는 더욱 무거운 짐을 안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생사의 기로에서 경영진과 노사가 힘을 합해 난국을 헤쳐 나가도 어려운 시기에 이사진들 간의 불화와 노사간 갈등으로 얽힌 복마전이 결국 회사를 풍전등화의 위기로까지 몰고 갔다는 사실은 새삼 다른 기업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구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