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디지털TV 화면주사방식을 놓고 그동안 순차방식을 주장해온 컴팩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 컴퓨터업체들의 목소리가 움츠러들고 있다.
가전업체, 방송사 등 경쟁업계의 견제에다 컴퓨터업계 내부 의견마저 차이를 보이면서 가장 앞서 순차방식을 주장하던 이들 3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디지털TV는 화질, 음질이 탁월하고 같은 주파수대역에서 많은 채널을 운용할 수 있는 등 기존 아날로그TV에 비해 이점이 많다. 또한 홈쇼핑, 주문형비디오, 영상회의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컴퓨터는 물론 가전, 방송, 콘텐트 등 관련부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즉, 디지털TV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단순히 가전부문의 일부가 아닌 미래 첨단 정보사회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당초 컴퓨터업계는 순차 주사방식을, 가전업계는 비월 주사방식을 지지했다.
컴퓨터업계는 선공에 나섰다. 디지털TV를 시청할 수 있는 PC의 제작에 나서 내년부터 제품의 출시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컴퓨터업계 입장에서는 향후 10년 안에 무려 1천5백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되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컴팩, MS, 인텔 3사의 눈앞에도 가전, 방송업체들과의 경쟁만 존재했다. 이들은 컴퓨터업계가 가전, 방송업계에 비해 더 디지털추세가 진행돼 있고 따라서 디지털TV시장에서도 당연히 앞서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6개월을 넘어선 지금 3사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컴퓨터업체들의 입장 변화를 읽지 못한 데서 발생했다.
디지털TV 표준이 발표된 이래 소비자들의 취향을 지속적으로 추적해온 IBM, 델컴퓨터, 패커드벨, 휴렛패커드(HP), 게이트웨이2000 등은 3사와는 생각이 달랐다.
델컴퓨터는 『우리 소비자들의 관심은 컴퓨터에 있다』고 밝혔다.
HP도 『소비자들이 PC를 통해 TV를 시청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올 가을 PC/TV를 출시할 계획인 IBM조차 『PC/TV는 틈새시장일 뿐 주력사업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몇달동안 컴퓨터업계의 호들갑 때문에 가전업계와 같은 보조를 취해온 방송사들도 덩달아 최고의 경계태세를 갖췄다. 방송사들은 컴퓨터업계에 대응을 촉구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CBS를 비롯해 ABC, NBC, 폭스 등 4대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비월 주사방식으로 전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TV수상기가 다양한 형태의 주사선 방식을 수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시그널이 비월방식으로 전송되면 시청자들이 화면을 보기 위해서는 비월방식을 택해야 한다. 즉, 방송사가 시그널을 비월방식으로 전송하면 결국 TV수상기도 비월방식만 채택해야 된다는 소리다.
케이블TV업계도 컴퓨터업계의 기대와는 다른 길로 빠졌다. 미국 케이블TV연합(NCTA)이 비월방식을 따를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러자 마침내 3사 연합도 균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텔이 순차방식을 고집하는 데 반해 컴팩이 다른 의견을 밝힌 것이다. MS는 유동적인 입장인 등 이들 3사는 각각 세 가지 주장을 하는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디지털TV 화면 주사방식 경쟁에서 업계간 승패는 어느 정도 판가름났다고 보고 있다. 이는 물론 TV보다 늦게 출발한 컴퓨터업계가 기술만을 고집, 독불장군 격으로 소비자들에게 파고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던 이유가 가장 크다.
아무튼 이로써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한 미국 시청자들은 오는 2000년에 시작될 새로운 디지털TV서비스를 종래와 같은 TV를 통해 시청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허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