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는 완행열차」
인도 제2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위프로 시스템스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같은 비유로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동안 고속 성장을 지주해 온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이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는 달리 속으로 곯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90년대 들어 연평균 60% 고성장을 구가해 왔다. 그 결과 96 회계연도의 수출액은 6억달러에 달했으며 97회계연도엔 10억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에 무슨 문제가 있길래 위기를 거론하는 것일까.
찬드라스카란은 이같은 외형적 숫자놀음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고도 성장은 사실상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의 확대에 따른 반사적 이익을 챙긴 데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인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0.35%에 불과하며 몇년전보다 결코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같은 사실을 증명한다고 그는 말한다.
한마디로 열심히 「제자리 뛰기」만 해 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세계의 시장 분석가들이 인도가 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의 거인으로 급성장할 것이란 분석을 해 온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세계 은행은 특히 지난 93년 「인도의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수출 잠재력」이란 평가서에서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 수출액이 96년까지 7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는 그 10분의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 성장 속도가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을 훨씬 밑돌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최근 들어선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의 높은 임금 수준과 해외 시장의 경쟁 심화로 인해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기론이 확산되는 추세다. 위프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과거의 노동 집약적인 인도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경영 구조는 고임금 시대가 도래하면서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90년대 들어 인도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의 임금이 연평균 30%가량 인상돼 왔다며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몇년내로 기업들은 이익을 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바탕으로 한 저기술력의 프로그래밍 작업을 통해 발전해 온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이 거세지면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 인도는 마르크나 프랑, 파운드 등 유럽 각국의 통화를 기반으로 작성된 재무 프로그램을 유럽통화단위(ECU) 기반 프로그램으로 바꾸거나 2천년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노동 집약적이고 단기적인 작업 위주의 활동을 통해 틈새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같은 프로그램 개발은 오래동안 지속될 수 있는 것이 못되며 그리 대단한 기술력을 요하는 작업도 아니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시장 수요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세계 시장에서 이스라엘, 싱가포르, 아일랜드 등 경쟁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인도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때문에 현 위기를 타개하려면 인도 업계가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마인드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격이 유일한 경쟁 척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고객이 진정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 제3의 소프트웨어업체인 인포시스의 나라야나머시 회장은 이와 관련, 3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프로그램 개발 계약시 해외 사이트보다 인도 내에서 수행할 작업 부분을 늘릴 것, 지적 재산권 확보에 관심을 가질 것, 주문형 프로그램보다는 고유의 기술력을 활용한 자체 상표 부착 제품을 개발할 것 등이다.
이같은 전략이 하루 아침에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실제 인포시스 등 일부 인도업체는 이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나라야나머시 회장은 말한다.
그는 한편, 인도의 고임금화 현상에 대처키 위한 노력으로는 필리핀, 중국 등 저임 국가 업체와의 협력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세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