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영역의 파괴로 서비스 사업자들간 경쟁도 관심거리이지만 가장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은 단연 이동통신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이다.
기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디지털 이동전화와 무선호출기(삐삐), 시티폰(CT2)의 기술향상에다 조기 상용서비스에 나설 개인휴대통신(PCS), 주파수공용통신(TRS), 무선데이터통신 등 새롭고 다양한 분야의 이동통신기기를 경쟁업체들보다 한발 앞서 개발해야 하는 것이 생산업체들의 부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무선가입자망(WLL)이나 위성휴대통신(GMPCS)을 거쳐 단말기 하나로 모든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의 기술개발도 본격적으로 착수해야할 입장에 놓여 있어 업체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통신기기 제조업체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은 다른 데 있다. 통신영역의 파괴로 대두되고 있는 통신기기의 멀티화 기술개발이 바로 그것. 이는 이동통신기기가 기본적인 음성서비스 기능을 바탕으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부가적으로 탑재해야 하는 등 고난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고 있어 제조업체들마다 기술개발에 한층 더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력이나 연구인력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중소 제조업체들에겐 한꺼번에 여러 기종의 단말기를 개발하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비록 기술력이나 자금, 인력 등에서 다소 여유가 있는 대기업들의 경우 그나마 괜찮은 편이나 외형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는 이들 중소업체에게는 엄청난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취약한 자본력과 한정된 인력으로 다양화, 멀티화해 가는 이동통신기기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소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이른바 「떠오르는 틈새시장 공략」이다.
굴지의 대기업조차 손대기 힘든 특정 연구분야를 중소 제조업체들이 적극 참여, 개발함으로써 나름대로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세원텔레콤의 경우 국내에선 관련 기술력이 전무해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는 디지털 TRS 단말기의 기술개발에 착수하는 등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톡톡히 활용하고 있다. 「위기」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들의 어려운 사정도 중소업체들 못지않다는 게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CDMA 종주국」의 명예에 걸맞지 않게 이동전화 단말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MSM(Mobile Station Modem) 칩 등이 상용서비스 1년6개월이 지나도록 아직까지도 국산화하지 않는 등 미개척 연구분야가 상당히 많아 한정된 연구인력을 다른 데로 선뜻 전환하기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
『솔직히 대기업조차도 현재의 연구개발 인력을 어떤 식으로 배치해 제품개발에 나설지 혼란스럽다. 자칫 연구개발 분야를 잘못 선정할 경우 시장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 어려운 입장이다.』 이동통신기기의 영역파괴로 연구개발 분야의 방향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는 모기업 연구관계자의 이같은 지적은 현재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을 둘러싸고 펼쳐지고 있는 변화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결국 이동통신 분야에서 불고 있는 영역파괴가 기존 사업자나 신규 통신사업자들 모두에게 「기회와 위기」로 동시에 작용하듯이 통신기기 제조업체들도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김위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