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D램 시장 주도권 안심할 수만은 없다

80년대 중반 D램 반도체의 강국이던 미국과 일본간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렵게 뿌리를 내린 국내 반도체산업이 1MD램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4MD램 시장에서 D램 강국으로 부상한후 이제 16MD램에 와서는 세계시장을 좌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D램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 업계에서는 오너 경영체제에 따른 과감한 투자를 손꼽고 있으며 일본업체들의 투자지연과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80년대 중반 일본업체들에 밀려 미국업체들이 사실상 D램 시장을 포기한 사례와 그후 일본업체가 미국으로부터 대대적인 압박을 받아 입지가 제한되었던 점 등을 지적하고있다.

초창기 국내 메모리산업은 태동 당시 일본업체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4MD램시장에서 일본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등한 입장에 올라선 데 이어 16MD램 시장에서는 주도권을 잡았다. 업계는 시장이 본격 형성단계에 있는 64MD램 시장에서도 국내업체들의 입지는 위축되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부터 D램 가격의 거품이 걷히고 들뜨고 자만했던 마음들이 진정되면서 세계 D램시장에서는 우리가 예기치 못했거나 예상을 뛰어넘는 뜻밖의 상황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우선 일본업체들의 시장탈환 노력과 미국, 일본업체들과 협력을 통한 대만업체들의 집요한 추격이 예상을 넘어설 정도인데다 전혀 경계하지 않았던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업체들의 도약도 「위험상대」라 말할 만하다.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대만업체들이 D램사업에 참여한다고 선언했을 때 과거 우리에게 일본이 보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냉소적인 시선이었다. 대만업체들이 공장을 건설하고 제품을 내놓기 시작하더라도 국내업체들은 호황때 비축한 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만업체들이 고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대만업체들이 자본집약적인 D램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었으나 최근 대만업체들은 예상을 깨고 이 분야에 불도저식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의 대표적인 반도체업체들이 계획하고 있는 16∼64MD램 관련 투자액만도 현재 총 4백억달러에 달하며 이를 통해 현재 3%인 세계 메모리시장 점유율을 2000년 이전에 5%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동안 국내 반도체업체에 대한 덤핑제소에 앞장서온 美 마이크론社가 최근에는 16MD램의 생산량을 대폭 늘려 가격하락을 저지하기 위한 감산노력을 펼치고 있는 국내업체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현재 업계가 추정하는 마이크론의 16MD램 생산량은 대략 월 3천만개로 16MD램시장에서는 세계 최대의 D램업체인 삼성전자를 앞선다.

대만과 마이크론 등 미국업체들의 16MD램 증산이 국내업체들의 분석대로 64MD램으로 넘어가는 행보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특히 대만업체들의 경우 과거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시장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가격공세를 벌일 경우 시장가격에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한일업체들의 감산노력에도 불구하고 16MD램 가격이 최근들어 다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차세대 64MD램 시장에서도 일부업체를 제외하고는 국내업체들의 입지가 확고하다고 볼 수 없다는것이며 2백56MD램 이후의 상황은 더욱 더 낙관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2백56MD램 이후부터는 새로운 개념의 프로세스를 요구하는 차세대 3백㎜ 웨이퍼를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큰데 3백밀리 관련 국내 장비, 재료 기술은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일천하기 때문이다.

제품간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때 대체로 세계시장 판도도 바뀌어 왔다. 앞만 보고 달려도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 국내업체들은 선발업체들과 길을 닦는 경쟁은 물론 후발업체들의 추격도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막강한 전자대국 일본이 한국에 D램 주도권을 넘겨야 했던 전철을 총체적인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업체들이 밟기는 훨씬 쉬운 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