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책과 이익 (5)>
인터넷 부문에서 미국 기업들의 사업 기회를 뺏아가는 업체들은 대개 민간 부문 인터넷 기술 수준은 미국 기업보다 뒤지지만 암호화 수출 장벽은 없는 국가의 업체들일 경우가 많다.
인터넷 부문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을 예로 들어 보자. 암호화 소프트웨어 개발 욕구가 강한 일본은 이 부문에서 엄청난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비즈도스氏는 일본에서만 외국 경쟁업체들에 연간 1억달러 이상을 뺏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ITAR 법이 없었다면 미국 기업의 차지가 됐을 만한 계약들이 프랑스와 러시아, 호주 기업들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그는 『먼저 시장을 차지한 업체가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장을 장악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초반전 상황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미 보안국(NSA)과 FBI 또한 미국에서 사용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소프트웨어 기반 암호화 제품에 대해 클리퍼라는 규격을 채택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려 했다. 클리퍼 칩은 컴퓨터 네트워크와 전화 네트워크를 타고 다니는 기밀 정보를 자동적으로 암호화해주면서도 미국 정부 기관이 필요로 할 때는 언제나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 기술이다. 만약 국가 보안 문제나 범죄 사건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면 이들 기관에서는 언제라도 암호화된 파일을 읽을 수 있다.
개인 사생활 옹호론자들은 클리퍼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들도 이 법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컴퓨터에 침투하거나 개인적인 자료에 무단 접근할 것을 두려워한 미국 업계 관계자들은 컴퓨터 파일을 암호화시키는 것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인베스터스 비지니스 데일리」지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만든 스크램블링 도구만도 4백55개가 팔릴 정도로 미국산 제품의 대체품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규제 정책으로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시장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이에 당황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이나 실리콘 그래픽스의 에드 맥크라켄 회장 같은 컴퓨터업계의 주도 인사들은 앨 고어 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법을 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 문제를 토론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프트웨어 해독 열쇠를 갖겠다는 의도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세계 통신 시장에서 미국 중심의 표준과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미국의 방침은 기술 지원 정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불행하게도 이같은 정책은 GII 계획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