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26)

고릴라의 암컷은 자위에 있어서도 능숙하다.

다른 유인원에 비해 지능은 탁월하나 섹스에 있어서는 미숙한 수컷이 암컷의 성욕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암컷은 스스로 마무리를 한다. 수컷이 자위를 할 경우에는 수컷 우두머리의 첩 격인 암컷이 즐비해도 자기에겐 섹스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경우, 우두머리와 첩의 섹스를 공개할 때 그것을 지켜보며 흥분한 나머지 자위행위를 하게 된다.

고릴라의 성격은 매우 내성적이다. 이 때문에 새끼 고릴라들을 제외하고는 집단 내에서도 거의 사회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런 후진스런 생활방식은 교미행위에까지 적용되어 성적 충동이 비교적 약한 편에 속한다.

한 마리의 암컷 침팬지가 무리 중의 수컷 모두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과는 달리 고릴라는 한 마리의 암컷이 섹스 수용태세를 보인다고 해도 수컷들은 냉담한 상태로 대응한다. 암컷은 먼저 수컷에게 접근하여 스스로를 내보임으로써 주도권을 잡고, 사랑행위를 수행한다. 또한 한 쌍의 고릴라가 교미중이라 할지라도 다른 수컷들은 그 장면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뿌아아아-.

오, 오, 오, 오- 고릴라들의 괴성과 디주리두 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실내를 울렸다. 사내는 다시 한 번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화면을 계속 바라보았다.

스텝 바이 링크.

섹스는 링크. 그 링크를 위한 과정이 천장의 화면에서 절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신비스럽고 억제할 수 없는 충동, 하지만 인간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링크하는 동물과는 달리 명분이 필요했다. 사내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링크를 위한 명분. 그것은 한 스텝, 한 스텝 단계별로 진행되는 게임이었다.

명분. 혜경에게도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 명분을 살리기 위해 사내는 많은 노력을 했다. 명분을 위한 명분. 그것 또한 게임이었다. 사내는 그 명분을 만드는 게임 자체도 즐겼다. 이미 결론이 나 있는 게임. 그 결론을 사내는 밤마다 확인할 수 있었다. 카메라였다. 창연 오피스텔 어느 층이든 다가설 수 있는 카메라를 통해서였다.

사내는 깊게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고는 담배를 껐다. 테라코타. 사내는 한손으로 계속 테라코타를 매만지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가득 거미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