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김종헌 통신원) 러시아의 한 PC업체가 미국에 생산공장을 짓고 미국 브랜드의 PC를 만들어 러시아로 역수입해 판매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권의 컴퓨터 상가에서 1백% 러시아 자본으로 만든 서방 PC가 판매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화제의 컴퓨터는 「CLR」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유통되고 있다. 러시아의 컴퓨터 구매자들 사이에 최근 새로운 미국 브랜드 PC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이 기종은 미국의 생산 여건과 미국 노동자들의 손을 빌렸을 뿐 사실은 러시아의 부품과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CLR은 러시아의 컴퓨링크사가 미국에 세운 자회사 컴퓨링크 리서치사의 첫 이니셜을 딴 약자인 동시에 이 자회사 겸 연구소가 동구권 시장을 겨냥하고 의욕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PC의 상표이기도 하다.
러시아 국내의 PC업체가 굳이 미국 상표를 달고 러시아의 컴퓨터 구매자 층에 파고 드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러시아 PC시장은 러시아업체의 제품이 아무리 우수해도 브랜드가 미국것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급기야 컴퓨링크사는 미국에 현지 생산 공장을 차리고 아예 미국 상표의 PC를 만들어 러시아에 들여와 팔는 전략을 펴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4월 착수된 컴퓨링크사의 미국 현지법인 설립은 아서사 출신의 유명한 컴퓨터업계 매니저인 조르쥐 카코브스 주도로 미 남부의 플로리다 주에서 추진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립 시설과 기타 생산 설비가 이곳에 완성됐고 아서를 비롯한 인텔, 제오스사 출신의 연구 인력이 이곳에 추가로 영입됐다.
이 같은 노력 끝에 최근 탄생한 모델이 CLR PC로 성능이 우수하고 값이 싸면서 러시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미국 브랜드 PC라는 특징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 기종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은 물론 남아메리카와 중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도 대대적인 광고 공세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판매 신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판매를 시작한 지 겨우 6주 남짓만에 이미 남미에서 7천여대, 미국에서 6천여대, 러시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물량이 거래됐다는 것이다.
현재 이 PC의 러시아지역 판매권은 모회사인 컴퓨링크가 갖고 있다. 그러나 컴퓨링크는 독점적인 판매대행권을 행사하지 않을 방침이며 CLR을 단순한 외국 모델로 취급해 대리점을 모집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말해 CLR PC의 판매전략을 기존의 다른 서방 PC와 차별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PC구매자들의 기호를 고려한 컴퓨링크사의 이같은 전략은 다른 컴퓨터 업체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앞으로 러시아 자본의 미국 PC공장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미 러시아 주요 컴퓨터 업체들이 국내의 불안한 경제 상황과 기본 생산설비의 낙후를 이유로 『PC 생산 설비를 국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히고 있어, 이같은 전망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향을 볼 때 러시아 PC업체들의 해외 생산 거점은 앞으로 동남아시아지역이나 중국, 서남아시아지역보다 미국지역에 집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미국브랜드 PC를 선호하는 러시아 소비자들의 기호가 쉽사리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당분간은 러시아 자체브랜드의 PC가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뿌리 내리기는 힘들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