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김종헌 통신원】 실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새로운 컴퓨터 게임이 최근 러시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화제의 게임은 「스파이 크래프트(부제:위대한 게임)」. 이 게임은 전 미국중앙정보부(CIA) 부장을 지낸 윌리엄 콜리와 옛 소련 비밀경찰국(KGB) 미국 담당 책임자를 지낸 올레그 칼루긴, 세계적인 첩보 소설가인 제임스 애덤스가 공동으로 만들어 지난해 미국 시장에 내놓은 바 있는데, 최근 이 제품이 뒤늦게 러시아에 상륙,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게임 애호가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러시아간 알력이 해소돼 사실상 냉전이 끝난 상태에서 컴퓨터 유통가에 등장한 이 게임은 치열했던 지난 시절의 미-소 대결을 상징적으로 재현, 구세대들에게는 묘한 향수를 자극하고 신세대들에게는 첩보전의 실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편 「스파이 크래프트」를 찾는 고객들이 갑자기 많아져 모스크바에서는 벌써 정품이 동나고 이 제품의 불법 복제품이 대량으로 유통되는 실정이다. 미국 액티비전사가 제작한 이 제품은 인터넷에도 등록돼 최근 러시아에서도 이용자가 늘고 있는 인터넷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게임으로 조사됐다.
이 스파이 게임은 수많은 비디오 재료와 사진 등 매력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돼 있어 누구든 게임을 시작하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이용자들은 말한다. 이야기 구성도 여러 단계의 난이도로 돼 있어 재미를 더해주고 군데군데 다른 에피소드가 끼어들어 흥미를 돋우고 있다. 게임 속의 「붉은 광장」은 광장 안의 실제 건물들을 실물 크기대로 재현하고 있어 마치 크렘린 궁 안에 들어가 게임을 하는 인상을 준다.
이 첩보 게임의 이용자들은 주로 14세에서 25세에 이르는 청소년과 청년층이 대부분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옛 냉전시대를 살았던 성년층과 심지어 노년층에서도 게임의 사실성에 매료돼 컴퓨터 상가를 상당수 찾는다고 한다.
게임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무대는 대통령 선거 당시의 러시아로 복고주의자와 보수 강경파들이 선거를 방해하고 대통령을 관좌에서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기도하는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부를 전복시켜 군사독재 정권을 수립한다는 것이 쿠데타 주도측의 계획이다. KGB는 자체 힘만으로는 이 정부 전복기도를 무산시킬 수 없다고 보고 미 CIA에 도움을 청한다. 이 요청에 따라 미 정보부원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고 모스크바로 파견돼 종횡무진으로 활약해 쿠데타 세력을 무찌른다는 줄거리다.
게임 속에는 재미를 더해주기 위해 핵무기를 장악하기 위한 테러리스트들도 나오고 마약 거래자와 파시스트 같은 국수주의자들도 나와서 게임 이용자들에게 혼이 나는 장면도 있다.
게임 이용자들은 이 스파이 게임을 통해 단순히 적만 격파하는 게 아니라 미국 러시아 비밀 첩보조직원들의 훈련 모습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고 이들 비밀조직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이든지 내부를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치를 쓰고 직접 그 건물의 계단과 방, 가구 배치 상황까지 체험할 수 있다. 또 범인 추적 카메라를 필요한 위치에 두고 혐의자 사진을 촬영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화기에서 새어 나오는 소음으로 추적대상 인물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대리 경험도 할 수 있고, 소형 슈퍼 컴퓨터로 본부의 대형 컴퓨터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그때그때 파악할 수 있는 시험도 가능하다. 또한 게임 중간중간에 미 중앙정보국이나 러시아 비밀경찰국의 역사와 첩보원들의 이력도 조회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런 매력이 「스카이 크래프트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게임은 분량이 많고 난이도도 다양하다. 이 때문에 게임 애호가들은 몇날며칠을 붙어앉아 씨름하는데, 결국에는 대통령 선거를 무사히 치르고 새로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 묘 단상에 올라 20만명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액티비전사는 이 게임의 인기에 스스로 놀랐다고 밝히면서 「위대한 게임」 속편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스파이 게임은 냉전 종식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재편과 이 새 질서 속에서의 러시아 쇠퇴를 반영하고 있어 러시아 일부 지식층은 이 게임의 확산에 반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스카이 크래프트 붐」을 극적인 재미를 즐기려는 젊은층의 일시적인 충동으로 해석하고 이같은 붐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애써 낙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