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29)

더듬이 조각.

화면에는 암컷의 질에 박혀 있는 수컷 거미의 더듬이 조각이 클로즈업되어 비쳤다.

더듬이로 암컷의 질에 정액을 쏟아 넣은 수컷은 잔뜩 허기진 암컷에게 잡혀먹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면서 암컷 거미에게 자신을 기억시킬 선물을 안겨주었다.

바로 더듬이 조각이었다. 페니스 대신 사용했던 수컷의 더듬이 파편을 암컷의 질 속에 깊이 박아둔 것이었다. 파열된 더듬이 조각, 비록 페니스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섹스의 격렬함이 그대로 나타난 흔적이었다.

절정과 죽음.

용케 암컷의 먹이가 되지 않는다 해도 수컷 거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섹스의 절정은 결국 죽음. 수컷은 사랑행위를 준비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응축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때문에 교미를 끝내고 무사히 암컷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한 수컷이라 할지라도 섹스에 쏟아 부은 에너지가 너무 커서 탈진하여 죽게 된다.

그 절정의 순간을 잃어버릴 새라 식음을 전폐한 채 보름 동안 몽롱하게 지내다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암컷에게 잡혀 먹히든지, 탈진해 죽든지 거미에게 섹스는 죽음이다. 그 죽음의 절정을 위해 열중하는 수컷 거미, 사내는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한손으로는 여전히 테라코타의 둔부와 두덩을 어루만지며 천장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거미가 나타났다. 네필라류였다.

열대지방의 바퀴 그물거미인 네필라류는 암컷이 조그만 수컷보다 6백배 이상의 무게를 지닐 만큼 크다. 네필라류는 다른 암컷과는 달리 수컷을 닥치는대로 잡아먹지 않는다. 수컷은 차라리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은신처로 암컷 네필라류의 복부 위에 거주하며 사랑행위를 할 때까지 안전하고 평온하게 기생동물로서 살아간다.

화면으로 네필라류의 수컷과 암컷이 사랑행위를 계속하는 것이 보였다. 한 번의 링크를 위해 온몸을 던지는 수컷 네필라류. 네필라류의 사랑행위는 체구가 작은 수컷의 모든 에너지와 기의 원천을 다 소모시켜 버리고 만다. 결국 수컷은 사랑행위가 끝나자마자 기진하여 숨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단 한 번의 링크를 위해 수컷을 자신의 복부 위에서 기생하도록 방치한 암컷 네필라류는 이미 숨져 있는 자신의 섹스 파트너로 허기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