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프트웨어 업계의 「불법복제 콤팩트디스크(CD)와의 전쟁」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전선 이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주로 중국을 겨냥했던 미국 업계의 불법복제 CD와의 전쟁이 최근 들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마카오, 홍콩 등을 대상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미국 업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이 미국과의 지적재산권 보호협정 준수를 위해 강력한 CD 불법복제 단속을 하고 있는 반면, 동남아 국가들이 새로운 불법복제 온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과 무역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맞으면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 지적재산권 보호협정을 체결하고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오고 있다.
미국 업계는 이에 따라 불법복제 CD 생산거점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이전된 것으로 보고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특히 최근 들어 동남아 국가들의 CD 생산공장 설립 붐을 주목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지난 94년 4개였던 CD 생산공장이 올해까지 10개로 늘어날 전망이고 홍콩과 마카오에도 지난해까지 6개에 불과했던 것이 현재 35개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이들 4개국의 연간 CD 생산능력도 총 5억5천만장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과 지적재산권 분쟁을 겪었던 중국이 지난해 수십개의 CD 생산공장을 폐쇄한 것과 비교하면 동남아에 일고 있는 CD생산 붐이 어느 정도인지 확연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 합법 생산된 CD의 수요가 최근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 체감효과는 더욱 커진다.
미국 업계는 이와 관련, 이들 지역의 생산능력 통계엔 컴퓨터 소프트웨어용 CD가 포함된 것이긴 하지만 세계 제2위의 시장인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 CD시장의 연간 판매량이 3억5천만장이라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지나치게 많은 규모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미국 업계는 따라서 동남아 국가에 대한 CD 불법복제 감시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특히 해당 국가의 정부들은 『소매 유통업체들이나 단속하고 불법 복제된 CD를 몰수하는 과거의 단속방법에서 탈피해 제조업체들을 감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국가들 대부분이 CD 제조업을 새로운 경제도약을 위한 첨단산업으로 분류, 육성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제조업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대대적 단속을 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중국의 예가 보여 주듯이 미국과의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
국제음반산업연합(IFPI)의 기오우 주이 창 홍콩담당 책임자는 『동남아 국가들이 불법복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이같은 상황 전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외국인 투자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실정이어서 미국이 불법 CD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 투자에 제동을 걸 경우 이들 국가의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국가는 때문에 미국측에 불법복제 근절을 위해 나름대로 성의를 다하고 있음을 보이려 하고 있다.
일례로 싱가포르는 지난 95년 「지적재산권보호기구」를 출범시키고 수시로 유통 매장들에 대한 단속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5백60만 달러 어치의 불법복제 CD를 압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미국측은 이런 정도의 활동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 시내 전자상가를 돌아보면 이같은 단속활동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싱가포르 도심지의 CD판매점에선 극장 상영 중인 영화의 비디오CD를 판매하고 있으며 그들은 단속의 손길보다 도둑이 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같은 미국 업계의 불만에 대해 싱가포르 당국은 『자유시장 체제에서 정부가 미시경제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각종 불만을 수렴해 증거를 확보하는 대로 더욱 강력한 단속을 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홍콩은 CD 제조장비에 대한 「사용승인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는 CD 불법복제자에 대한 「거주 제한」을 계획하는 등 미국을 의식한 강력한 불법복제 제재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