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특집] 경쟁시대 맞은 정보통신산업

정보통신이 세상의 지배논리를 바꾸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정보통신 인프라와 산업의 수준이 한 나라의 국운을 결정짓는 가장 중대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통신사업 자유화에 따른 경쟁 도입과 신규 통신서비스의 대거 등장이라는 시대적 변화가 1백여년 동안 통신업계를 지배해온 「공존의 논리」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있다.

「통신사업=국가 독점사업」이라는 등식이 이른바 자유무역체제라는 새로운 국제 교역질서의 등장으로 일거에 붕괴되면서 국경도 없고 업종간 경계선도 무너지는 혼돈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올초 세계무역기구(WTO) 기본통신협상이 타결되면서 전세계는 정보통신 분야의 무한 경쟁 시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고 그동안 경험하진 못했던 혼돈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된다. 혼돈은 내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98년으로 예정된 통신사업의 완전 자유화를 앞두고 세계 각국은 「대외경쟁력 확보」라는 목표 아래 통신사업의 경쟁 확대라는 새로운 실험에 착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국제전화와 무선호출 분야에 부분적인 복점체제를 시험해본 우리나라는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각 통신사업 분야에 무더기로 사업권을 허가했다.

이동전화의 경쟁서비스인 개인휴대통신(PCS) 분야에 3개 사업자를 신규 허가해 총 5개 사업자 경쟁체제를 만들었고 시티폰과 주파수공용통신(TRS), 무선데이터통신 등의 새로운 서비스를 등장시켰다.

또 마지막으로 제3국제전화사업자인 온세통신을 세번째 시외전화 사업자로 선정하고 「독점 시대의 상징」인 시내전화 분야마저 데이콤이 주도하는 하나로통신에 사업권을 허가, 경쟁체제로 전환시켰다.

여기에 인터넷폰 사업을 비롯해 초고속망 사업, 음성회선 재판매사업, 구내통신사업 등 이른바 틈새형 서비스가 별종통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양산될 전망이어서 국내 통신사업 구도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말 그대로 통신사업의 무한경쟁시대가 내부부터 본격화된 것이다.

이같은 통신사업자의 무더기 등장은 통신서비스 분야뿐만 아니라 통신장비, 통신기기에 이르는 정보통신 전분야에 엄청난 파고를 몰고 올 전망이다.

우선 통신서비스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이종 서비스간 영역파괴 현상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동종서비스 안에서나 존재하던 시장 경쟁이 영역 구분없이 무차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경쟁이 시작되고 이로 인한 가격 파괴와 신기술 개발이 급진전되면서 통신사업과 산업을 구분짓던 경계는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 시외전화와 이동전화 서비스간의 일부 장거리 구간 요금이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1백1km 이상의 장거리 구간은 일반 가입전화를 이용한 시외전화 요금이 이동전화를 이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비싼 상황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또 올해 3월 20일부터 서비스되기 시작한 시티폰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1백1km이상 장거리구간에서의 요금이 3분기준으로 일반 시외전화보다 40원이 저렴한 2백52원의 요금이 적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통신사업의 대분류인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서비스간의 경계선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내, 외전화 등 유선계 통신서비스와 이동전화, 시티폰 등 무선계 통신서비스는 이제는 더 이상 동거의 관계가 아니라 견제와 경쟁의 대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동전화보다 저렴한 이동전화를 표방하는 개인휴대통신서비스(PCS)가 등장할 경우, 「무선통신=고급, 고가서비스」라는 기존의 상식은 낡은 고정관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기존의 유선전화 서비스보다 훨씬 저렴한 이동전화 서비스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 선보이게 될 무선데이터통신서비스 역시 그들만의 고유영역으로 남아 있지는 못할 전망이다. 이미 고속무선호출 기술이 도입되면서 무선데이터 수요의 상당부분을 무선호출서비스가 잠식하고 있고 기업형 무선통신서비스인 주파수공용통신(TRS)서비스가 무선데이터분야에 선투자를 실시, 무선데이터사업자를 당혹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무선통신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유선통신서비스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전화기 시장의 주력제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9백MHz 가정용 무선전화기는 일반 전화의 통화거리를 수백미터까지 무선화,유, 무선 복합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와 함께 무선통신서비스인 시티폰의 가정용 기지국 보급이 활성화될 경우, 같은 전화기로 집에서는 일반 가입전화로, 밖에서는 이동전화로 이용할 수 있는 본격적인 유, 무선 복합형 서비스가 현실화된다.

특히 무선통신기술과 유선통신 기술의 접목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전화국과 가입자까지를 기존의 전화선이 아닌 전파로 연결하는 무선가입자망(WLL)과 무선 케이블TV망을 이용하는 지역다지점 분배서비스(LMDS), 다채널다지점 분배서비스(MMDS) 기술의 등장은 기존 가입 유선전화의 행동반경을 획기적으로 넓히면서 유선의 한계를 조금씩 허물 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러한 대내적인 변화는 서곡에 불과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시장을 열어야 하는 내년부터의 변화는 예측 불가능이다. 수백년간 쌓아온 통신서비스 운용경험과 뛰어난 성능의 통신시스템 기술을 앞세운 공룡들의 무차별적인 공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제 콜백서비스나 인터넷폰 등의 틈새시장을 노린 사업자들이 양산될 경우, 통신시장은 어쩌면 우리의 경험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고유번호로 전화를 걸어 발신지에 상관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에서 요금이 부과되는 콜백서비스의 등장은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발신지에 상관없는 이러한 요금부과체계는 기존전화료의 발신지부과원칙을 파괴하면서 국제전화의 무국경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같은 개방시대에는 오로지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의 법칙만이 유일한 진리로 통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통신산업이나 통신사업 분야에 후발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급진전인 변화에 대단히 민감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무엇보다 서비스 부문의 경쟁 경험 부족과 통신장비 부문의 기술력 열세가 향후 국내 통신업계의 목줄을 죌 것이란 우려가 지배적이다. 특히 기존 사업자들과의 차별화를 명분으로 신규사업자들의 외산 장비 도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같은 우려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내 업체들은 시장 개방을 계기로 세계 진출을 본격화하려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시장 개방은 일방적으로 우리측 시장을 여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모든 국가들의 시장이 개방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세계적인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장 개방을 소극적인 측면에서 볼 경우, 위기이지만 보다 적극성을 띤다면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최근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무선통신분야에서 단시일간에 축적한 기술과 운용능력을 극대화시킨다면 시장 개방이 결코 우리에게 불리하지는 않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통신장비 업체와 서비스 업체들이 공동으로 세계 처음 상용화에 성공한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디지털 이동전화 기술이 이미 이동통신의 본토인 미국을 중심으로 중남미나 동남아 일대에서 상당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CDMA 방식 시스템이나 단말기 업체들이 수억달러 규모의 대형 수출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 통신산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이미 수년 전부터 통신 인프라 후진국인 동유럽과 동남아 지역에서 세계 통신업계의 메이저 업체들과 겨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역시 한국 통신산업의 잠재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스템 산업의 그늘에 가려 그동안 인정받지 못해왔던 국산 단말기 제품이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위기와 혼돈의 뒷면에는 반드시 기회와 가능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통신산업은 이제 다음 세기의 생존과 몰락을 결정하는 절대절명의 시험대에 올라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정보통신 분야가 21세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정보통신 분야의 경쟁력 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승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