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이온전지의 기본특허를 둘러싼 일본업체간 주도권 경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8월 소재업체인 아사히화성이 기본특허를 취득하고 전지업체들을 상대로 특허 사용료를 청구하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그간 특허료 무풍지대나 다름없던 리튬이온전지에서도 특허분쟁이 일어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리튬이온전지는 PC, 휴대전화 등의 수요확대를 배경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는 생산액이 전년의 4배나 늘어 니켈수소 등 기존 제품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게다가 안전성 문제 등을 고려하면 리튬이온전지를 능가하는 2차전지는 당분간 나오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일치된 견해여서 리튬이온전지의 급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확실시된다.
이같은 성장성 때문에 리튬이온전지 특허에 대한 관련업계의 관심은 매우 높다. 한 예로 리튬이온전지 생산액은 일본 국내에서만 지난해 1천5백억엔, 오는 2000년에는 3천억∼4천억엔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중 특허료가 3백억엔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만히 앉아서 챙길 수 있는 수입이 3백억엔을 넘는데 소니, 산요전기, 마쓰시타전지공업 등 대형 전지업체와 아사히화성 등 소재업체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리튬이온전지 생산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해 시기적으로도 이제는 특허문제를 다툴 시점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치고 나온 것이 아사히화성.
아사히가 취득한 특허는 세 가지로 이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정극에 코발트산리튬이나 니켈산리튬, 음극에 카본을 사용하는 소재의 결합에 대한 특허다. 이는 정극과 음극에 어떤 소재를, 어떤 결합방식으로 사용하는가에 관한 것으로 전지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나머지 두 개는 발생한 전력을 모아 끄집어 내는 집전체에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기술과 전지의 과도한 발열을 막기 위해 세퍼레이터라는 막에 퓨즈기능을 부과하는 기술에 관한 것으로 모두 리튬이온전지에 불가결한 요소다.
아사히화성은 이와 관련해 자체조사를 실시한 결과, 매달 2천만개 정도 생산되고 있는 리튬이온전지 가운데 약 15만개를 제외하곤 모두 자사 특허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사히화성이 취득한 특허가 앞으로 권리로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리튬이온전지에 관한 기술이나 특허 대부분이 8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기 때문에 그 권리관계가 불분명하고, 특히 기본특허는 업체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개발을 추진해 왔기 때문에 어느 한 업체에 권리가 귀속될 수는 없다는 게 관련업계 기술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예를 들어 아사히화성의 소재결합에 관한 특허는 어디까지나 소재결합이 대상이며 소재 자체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데, 결합방법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아사히화성의 기본특허는 따라서 전지업체와 권리관계를 따지고 나서야 실질적인 특허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아사히화성의 선제공격에 즉각 반발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전지업체들은 오히려 교섭에 응한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91년 일본 최초로 양산화에 성공해 점유율 1위로 독주하고 있는 소니는 특허에 관한 상세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대응책은 마련하지 못한 상태나 일단 특허교섭에는 응한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소니는 양산의 선두주자인 만큼 상당수의 기본특허를 갖고 있다는 게 주변의 지배적인 견해다. 단지 다른 업체와의 권리관계가 아직은 불분명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점유율을 15%나 늘리며 2위로 올라선 산요전기도 음극에 흑연을 사용하고 있어 이번 특허에 대한 저촉은 부정하면서도 아사히화성이 신청하면 교섭을 벌인다는 자세다.
점유율 3위인 마쓰시타전지도 현재 특허를 신청중이고 이미 일부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도 교섭에는 응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대형 전지업체들이 아사히화성의 공세에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은 지난해 1월 시행된 개정특허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전 특허법에서는 특허청 심사완료 후 출원공고라는 일종의 가(假)면허를 권리자에게 부여했다. 동시에 3개월 이의신청을 받고 이의가 있으면 그 모두를 심사한 후 등록을 거쳐 본(本)면허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한 예로 집적회로 기본특허로 유명한 키르히 특허의 경우 12건의 이의신청이 들어와 가면허에서 본면허까지 3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현행 특허법에서는 특허청 심사가 끝남과 동시에 본면허가 부여되고 특허공보를 발행해 그 내용을 공개한다. 이후 6개월간 이의신청을 접수하지만 특허청의 심사 그 자체는 종료되기 때문에 특허 소유자는 생산중지가처분신청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아사히화성도 이미 본면허를 받은 상태이고, 앞으로 교섭에서 분쟁이 생길 경우 생산중지가처분신청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지업체들로서는 섣불리 행동할 상황이 아닌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들의 권리관계는 아사히화성의 특허가 공보에 그 내용이 공표된 이후에나 따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튬이온전지는 각 업체들의 집중투자가 계속돼 오는 2000년에 가서는 생산력이 일본에서만 10억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 3억, 4억개로 예측되는 수요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시장점유율도 중요하지만 리튬이온의 실질적인 1위자리는 기본특허 수입을 장악한 기업에게 돌아갈 것이 뻔하다. 이 기본특허의 세력판도는 아사히화성의 출원일로부터 역산해 볼 때 향후 2년간에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신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