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및 투자기관, 교육기관에서만 사용되어야 할 행정전산망용 PC 일부가 최근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시중에 불법유통되면서 말썽이 되고 있다. 일반 동급 PC가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행망용 PC를 확보하기 위한 상가업체들간 정보전이 치열하고 이를 구입하기 위해 일반 소비자들의 전자상가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컴퓨터업체들은 상가에서 거래되고 있는 행망용 PC의 유통실태 파악과 함께 대책마련에 적극 나섰다. 일부 업체들은 행망용 PC의 생산을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거 행망용 PC 부품이 불법으로 유통되면서 부품 유통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PC업체들이 발빠르게 행망용 PC의 불법 유통경로 차단에 나섰다는 것은 시의 적절하다고 본다. 물론 월간 PC 수요량이 20만대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물량인데 1만대 정도의 행망용 PC가 거래된들 무슨 큰 문제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행망용 PC의 불법유통과 관련해 걱정스러운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행망용 PC는 1백66㎒ CPU, 12배속 CD롬드라이브, 1.6GB 하드디스크드라이브, 15인치 모니터 등 최신 기종으로 유통가격은 90만원 정도이다. 비록 이 제품의 CPU가 AMD 칩이긴 하지만 90만원을 주고 이만한 PC를 살 수는 없다. 동급 기종이 시중에서 실제로 1백70만∼1백9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반값 정도밖에 안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PC 구매결정 포인트는 가격이다. PC의 구매에 있어서 가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가의 행망용 PC의 불법유통은 정상적인 PC의 유통질서를 왜곡시키고 소비자들의 불신을 조장하며 나아가 PC의 수요의 침체현상으로 PC 수급에서도 차질을 초래케 할 가능성이 높다.
행망용 PC의 불법유통은 이밖에도 정부의 조달체계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행정기관에서만 사용해야 할 관수용 제품이 일반인에게 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일부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등이 납품업체와 결탁해 행망용 PC를 상가로 빼돌리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은 정부의 감독 소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같은 비리가 오래 전부터 횡행하고 있었음에도 주무부서인 조달청이나 감독기관인 총무처에 적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행망용 PC의 불법유통은 그 싹을 철저히 색출해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기관의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다. 과거 정부의 행정망용 PC부품이 상가에 유통되었을 때 단속이 벌어졌지만 그때뿐 암암리 부품이 거래됐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의 임기응변식 단속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조달청이 PC 수요처와 공급업체에 제품주문과 공급을 맡기는 방식의 현행 조달체계를 개선하는 방안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수요기관과 PC업체, 대리점 등으로 이어지는 조달체계를 철저히 점검해 잘못된 부문은 하루속히 고치는 한편 강력한 감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달청이 최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조달전자문서교환(EDI), 전자상거래(EC)시스템을 전 정부기관과 투자기관, 교육기관을 비롯, 민간 납품업체와 연결해 효율적인 조달업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조달청이 수요기관과 PC공급업체간 제품주문과 공급을 간접적으로 관리하면서 수요기관으로부터 거래액의 1.4%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는 문제도 재고해 봐야 한다. 일부 수요기관들이 이 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 거래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제품을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부와 PC업체들이 행망용 PC의 불법유통 근절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현황 파악으로만은 문제해결이 안되는만큼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신속한 대응책 마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