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개정된 영화진흥법과 공연법 및 그 시행령이 11일 발효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영화사전검열 위헌결정으로 말미암아 그간 심의를 맡아온 공연윤리위원회가 폐지되면서 11일 그 업무를 대체할 민간자율 심의기구인 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가 발족됐다.
이로써 각종 영상물의 심의를 놓고 오랫동안 쌓였던 정부와 문화계 간의 마찰이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 의한 영상물 사전검열시대의 첨병역할을 맡아 왔던 공연윤리위원회(공륜)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영화 사전심의 위헌판결을 계기로 그 위상이 뿌리째 흔들렸다. 이후 공륜의 존속 및 폐지를 둘러싸고 각 영상관련업계의 중구난방식 의견이 제시되는 등 과도기적인 혼란을 맞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공진협의 발족은 영상업계의 공통이해를 끌어낼 수 있는 첫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번 발효된 새 영화진흥법과 공연법 및 그 시행령의 뼈대는 무엇보다 영상물의 심의방법이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영화의 경우 사전심의가 폐지됨에 따라 가위질 대신 「등급 부여제」로 바뀌었다. 기존 공연윤리위원회 대신 공진협을 구성하면서 사전검열로 지적된 심의상의 삭제권한을 없애고 등급부여제로 바꾼 것이다. 아울러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할 때 법적 제재를 내리도록 한 규정은 행정처분으로 완화했다.
등급은 연소자, 18세 미만, 15세 미만, 12세 미만 관람불가와 등급외(6개월까지 보류)로 구분된다. 비디오 역시 시청등급이 부여된다. 그밖에 공연법에 의한 연소자관람 대상 공연물 및 외국인의 국내공연물 각본, 컴퓨터게임 등 새 영상물, 가요음반, 광고선전 등의 심의업무도 이런 선상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새 시행령은 또 상영등급 부여 보류기간을 3개월 이상으로 규정하고, 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조항과 영화업 등록예탁금의 수익금 처리시 근거규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 문체부장관의 외국영화 수입추천권이 공진협으로 넘어갔고 문체부장관이 운영하던 영화제작 및 수입편수 조절제도도 폐지했다.
이와 함께 공진협은 기구 구성에서 행정권의 영향력을 배제했다. 공연법상의 심의기구 설치조항에서 공진협 위원의 임명은 당초 문화체육부장관이 추천하던 것을 「예술원 회장 추천-대통령 위촉」으로 개정됐다. 위원장, 부위원장, 감사(각 1인)는 각 위원들간 호선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이번 새 영화진흥법과 공연법과 그 시행령의 발효에 따른 공진협의 발족으로 이제부터 각 영상물의 심의는 국가기관의 손아귀를 벗어나 사실상 민간에 넘겨졌다. 즉 공진협 출범은 그동안 가위질로 불리는 정부의 타율규제가 민간 자율심의로 바뀐다는 점에서 한국 공연예술사에큰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제작자는 창작의 자유를 만끽할 것이고 민간에 의한 심의 및 사후제재가 국내 영상업계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앞으로 공진협은 심의체계 기준을 새롭고 올바르게 잡아두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특히 저질 공연예술작품 문제는 지금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또 공진협 발족으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상물 심의가 얼마나 탄력성을 갖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국영화 수입추천권이 문체부에서 공진협으로 넘겨진만큼 영상업계의 현안으로 불거진 외국 대중문화의 해금문제도 새로운 대응방법을 모색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영상업계는 이전처럼 경직된 규제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나아가 공진협은 명칭 그대로 공연예술진흥에 앞장서는 기구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게 영상업계의 주문이다. 급속히 발전하는 영상미디어 예술이 제대로 육성되도록 지원하고 세계로 뻗는 문화상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개정 영화법에도 위헌 소지가 많다는 영화인들의 주장도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등급외 전용관이 없는 상태에서 공진협에 3개월 이상 등급부여를 보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사실상의 상영금지에 해당한다. 또한 심의미필 영화를 상영할 경우 5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 것은 다른 법률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와 비교할 때 형평에 어긋나며 예술원 회장 추천과 대통령 위촉으로 구성되는 심의기구도 국가기관으로 보아야 한다고 영화인들은 주장하고 있다.
공연윤리위원회가 폐지되면서 그 업무를 대체할 민간 자율심의 기구인 공진협의 출범이 또 다른 문제들을 양산케 되는 것은 절대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