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들어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외 네트워크 환경은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극심한변화를 겪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은 영역파괴. 음성통신과 데이터통신 등 두 영역으로 나뉘었던 이원적인 구조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음성 만을 전달하던 회선이 데이터통신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최근 각광받고 있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의 경우 아예 음성과 데이터를 동시에 주고 받을수 있다. 데이터통신 분야에서는 근거리통신망(LAN)과 원거리통신망(WAN)의 통합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각 분야에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은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네트워크 환경이 총체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환경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네트워킹 기술과 장비의 발전이다.
하나의 장비가 이더넷, 토큰링, 광분산데이터인터페이스(FDDI) 등 LAN은 물론이고 WAN으로 분류되는 X.25, 프레임릴레이, 비동기전송방식(ATM)을 한꺼번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특히 ATM 제품은 음성, 문자, 동화상 등 멀티미디어데이터를 모두 수용, 전분야를 지원하는 전천후 네트워크장비로 쓰이고 있다.
네트워크업체들의 생존 전략이 영역확장 전략으로 몰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흐름의 결과다.
LAN 장비로 사업을 시작한 업체들이 WAN 분야로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으며 WAN전문업체들도 LAN 영역에 침투하는 추세다. 이들 업체의 목적은 LAN, WAN을 통합지원할 수 있는 토털 솔루션을 공급,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기술발전이 눈부신 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영역확장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기업 인수 및합병(M&A)이다. M&A는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 보다 기술을 보유한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계산에서 비롯됐다.
지난 96년경부터 네트워크업체들은 자사의 부족한 기술을 채워줄 수 있는 업체들을 인수하거나 합병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M&A 빈도 역시 같은 비율로 증가했으며 비용 또한 천문학적인 액수가 되기에 이르렀다.
M&A를 주도하고 있는 업체는 네트워크업계의 빅3으로 불리는 시스코시스템즈, 스리콤, 베이네트웍스. 라우터로 네트워크 분야에 뛰어들었던 시스코시스템즈는 스위칭업체인 칼파나, 라이트스트림을 인수했으며 96년에는 WAN 업체인 스트라타콤을 40억달러에 사들였다. 스리콤 역시 올해 2월 네트워크분야 역사상 최고의 금액인 66억달러를 투입해 WAN 업체인 US로보틱스를 인수, M&A의 극치를 보여줬다.
이에 질세라 베이네트웍스는 자일로직스, 랜시티,그리고 WAN 업체인 뉴브리지는 LAN 전문 유비네트웍스,어센드커뮤니케이션은 WAN 업계의 강자인 케스케이드를 전격 인수했다. 이들업체들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리모트액세스, 멀티미디어 분야로 M&A를 확대하며 혼전양상을 빚고 있다.
M&A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 업체에서 생산되는 각종 제품을 구입, 네트워크를 구축할 경우 시스템의 안전성이 높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서로 다른 기술 개념과 아키텍처를 갖고 있는 업체의 기술을 강제로 결합할 때 장비간 호환성 등에 문제가 있을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와 함께 네트워크업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업체간 통합 추세가 심화될 경우 최후 승자는 결국 자본력이 앞서는 거대 통신사업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이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