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71)

독수리.

환철은 프로메테우스의 옆에서 간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처럼 혜경의 몸에서 욕정의 불씨가 자라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였다.

그 독수리는 단 한번에 먹이를 낚아채듯 필요한 순간 강력하게 혜경의 욕정을 잠재웠다. 하지만 환철은 프로메테우스의 독수리와는 달랐다. 혜경에게는 그랬다. 자신은 묶여 있지 않았고, 독수리는 자신이 필요한 때만 부를 수 있었다. 그 독수리도 혜경이 벗어나고자 한다면 언제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부담을 주지 않았다. 우연처럼 다가와 우연처럼 벗어났다.

언제라도 좋았다. 늘 독수리가 되어 혜경의 몸에 타오르고 있는 욕정의 불길을 꺼주곤 했다.

언제라도 좋았다. 혜경이 원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혜경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동안 환철이 자신에게 얼마만큼 집착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얼마만큼 인내하고 노력했는지를 혜경은 모르고 있었다.

뿌아, 뿌아, 뿌아아아아아아-. 짧게, 그리고 길게길게 디주리두 소리가 이어졌다.

혜경은 다시 눈을 감았다.

히히힝, 검은 갈기를 세우고 달려드는 수컷 말의 소리가 들려왔다. 챙챙챙, 바라소리가 들려왔다. 디주리두 소리와 겹쳐져 혜경의 몸속을 헤집었다. 손끝 하나가 천천히, 등뒤에서 이제 앞가슴 쪽으로 천천히 옮겨오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이 스멀스멀거리기 시작했다.

혜경은 급하게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집어들고 버튼을 눌렀다.

벗어나고 싶다. 이제라도 벗어나고 싶다. 지금이라도 승민과 통화만 된다면 벗어날 수 있다.

무응답.

아, 혜경은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괜찮다. 다행, 차라리 다행이다. 순간적으로 등줄기에서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육체는 늘 생각보다 앞서 혜경의 몸을 달궈놓곤 했다.

혜경은 거울 앞에 섰다. 옷을 입을 때처럼 옷을 벗을 때도 늘 거울 앞에서 벗곤 했다.

블라우스와 스커트.

그것뿐이었다. 옷을 벗으면서 힐끔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계속 양수기로 맨홀에서 물을 뿜어 올리고 있는 관화문 네거리의 의미는 없었다.

혜경은 욕실로 들어서 거울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