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73)

종각.

승민은 전철에서 내려섰다.

냄새. 전철에서 내려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승민의 코를 찔렀다. 전철 운행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사람들도 정상적으로 드나들고 있었지만 화재의 흔적을 대변하듯 역한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개찰구를 빠져 나왔을 때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아주 늦은 시각은 아니었지만 종각 지하상가는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고, 지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승민은 망설이지 않았다. 보신각 종탑이 있는 쪽이었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설 때도 매캐한 냄새가 계속 승민의 후각을 자극했다.

밖. 승민이 밖으로 빠져 나왔을 때 화재의 흔적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광화문 네거리 쪽부터 종로 쪽까지 도로 한복판으로 길게 불이 밝혀져 있었고, 각 맨홀에서는 뚜껑을 열어 젖힌 채 양수기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곳까지 들어왔으려나? 승민은 도로 양편으로 개울져 흐르는 검은 물을 바라보며 지난번 한국전신전화주식회사의 초청을 받아 들어가 보았던 맨홀 속을 떠올렸다. 이 부근쯤까지 들어왔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맨홀 속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었고, 그 화재를 진화하기 위해 쏟아부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것이리라.

우르릉∥ 과르르릉∥. 승민이 맨홀 속에 처음 들어섰을 때 바로 머리 위로 전철이 지나는 듯 굉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공기도 탁했다. 자연순환장치와 강제순환장치가 가동되어 통신구내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있다고 했지만 지하 30미터 아래의 공기는 밖의 공기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시내의 공기 자체가 숨막힐 지경에 그 공기를 갈아 넣어 보아도 공기상태는 좋지 않을 것이었다. 또한 맨홀 속의 통신시설이 중요 시설이기 때문에 출입구를 각별히 통제하기에 더욱 환기가 용이치 않은 듯했다.

승민은 종로2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황금당.

승민은 긴장된 표정으로 황금당 앞으로 다가섰다. 지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금은 보석이 가득 진열된 상점 안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승민은 한동안 황금당 안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한곳에 정지해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도로 쪽으로 바짝 붙어서 두 번 세 번 왔다갔다 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황금당. 어떻게 침투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