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신(裸身).
혜경은 자신의 나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스스로의 의지로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많은 밤, 벗어나자고 벗어나자고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환철을 불러내려야 했던 자신의 육체. 혜경은 다신 한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제는 없었어. 언제든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벗어날 수 있었어. 언제든. 문제는 나였어. 나의 의지와 다르게 원하는 나의 육체였어. 오늘도 어쩔 수 없어. 오늘이 마지막이야.
아침에 치웠던 초를 다시 준비할 거야. 한 개의 촛불을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후비는 독수리 아래 밝혀둘거야. 그 촛불의 촛농이 임의롭게 흘러내리듯 오늘밤도 임의롭게 환철을 받아들일 거야. 그 촛불이 다 타도록 긴긴 시간을 지낼거야. 마지막.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야. 어쩔 수 없어.
혜경은 눈을 감았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한동안을 그렇게 서 있었다.
뿌요, 뿌요, 뿌요요요요요-
그칠 듯 이어지는 디주리두 소리, 혜경은 천천히 옷장을 열고 속옷을 챙겼다. 그리고는 잠시 망설였다.
실크 블라우스.
혜경은 버릇처럼 실크 블라우스를 입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몸매를 부각시킬 수 있어 즐겨입는 옷이었다.
누군가와 접촉이 이루어졌을 때 감촉이 좋은 옷. 바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혜경은 소파에 깊이 몸을 묻고, 캔 맥주 하나를 까 들었다. 찬물로 샤워를 한 끝에 마시는 맥주. 시원하기보다는 차가운 느낌이 왔다.
뿌요요요- 디주리두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 듣는 순간 수만년 동안 살아온 인류의 모든 혼이 자신에게로 몰려드는 것을 느꼈던 소리.
혜경은 다시 한번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었다. 재다이얼. 무응답. 여전히 신호는 가고 있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혜경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파워를 켜자 윙 소리를 내며 컴퓨터가 구동을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길지 않은 시간. 혜경은 그동안 많은 상념이 눈앞을 가렸다.
온라인. 오늘도 오프라인 상태를 온라인 상태로 바꾸어 놓아야 하는 것인가.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클릭. 단 한번의 클릭으로 오프라인은 온라인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혜경은 안다. 단 한번의 클릭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한 인간의 운명의 끝을 돌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혜경은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