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니콘社의 최신형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가 당초 기대했던 만큼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함에 따라 이 제품의 채용을 결정했거나 검토해온 반도체 생산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스테퍼(축차이동식 노광장치)는 반도체의 기판이 되는 실리콘 웨이퍼에 빛을 쏘아 회로를 그려넣는 장치로 니콘은 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스테퍼분야 거대 업체의 신형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가 시장 출하단계에서부터 소비자인 반도체업체들의 혹평을 받으며 삐걱거림에 따라 이런 문제들이 99년으로 예정된 2백56MD램 차세대 반도체 양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는 현재 일반화된 적외선 스테퍼와 달리 광원으로 파장이 한층 짧은 레이저를 사용하기 때문에 앞으로 고집적 D램 양산에 널리 사용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첨단 반도체장비다.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업체는 니콘과 캐논. 이 가운데서도 니콘이 캐논에 비해 다소 앞서 있어 본격적인 64MD램 시대를 앞두고 니콘 스테퍼의 점유율은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 니콘의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은 지난 5월. 이 시기는 대부분의 반도체업체들이 64MD램의 본격적인 양산에 대비해 니콘으로부터 대량의 장비를 구입하려 할 때였다. 그러나 납품 직전에 실시된 실험 결과 니콘이 출하하려던 장비가 반도체업체가 요구하는 정밀도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콘은 즉시 기술진을 총동원해 원인 규명에 나섰다. 니콘측은 『공장 조립작업자들의 숙련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바로 개선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결함은 니콘의 전체적인 스테퍼 수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니콘은 상반기 결산에서 당초 계획했던 수준의 스테퍼를 수주하지 못했고 그 결과 경상이익이 10억엔 감소한 약 50억엔으로 떨어졌다.
니콘은 문제가 됐던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를 현재 양산, 출하중에 있으나 실추된 제품의 신뢰도가 회복되기도 전에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니콘의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를 사용하는 반도체업체 가운데 일부에서 스테퍼의 광원장치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광원장치는 스테퍼에는 없어서는 안될 주요 부품인 동시에 지금까지 수명과 유지, 보수에 대한 불만이 집중돼온 장치이다. 삼성전자도 니콘의 엑시머 레이저 광원장치 수명이 보증했던 기간보다 너무 짧다고 클레임을 걸고 있다.
니콘은 광원장치를 대부분 외부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니콘에 광원장치를 납품하고 있는 업체는 미국 광원장치 전문업체인 사이머社로 이 업체는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용 광원장치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사이머社는 니콘제 스테퍼 광원장치에 대한 반도체업체들의 불만에 대해 『우리가 만든 광원제어용 프로그램과 니콘이 제작한 본체제어용 프로그램이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문제를 인정하면서 『삼성전자 제품을 포함해 지금까지 출하했던 약 1백대 제품 모두의 프로그램을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원장치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순물도 반도체업체로는 큰 고민거리다.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반도체업체들은 장치 내부를 직접 청소해야 하는 등 예상하지 않았던 유지, 보수 등의 관리작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니콘의 한 관계자는 『유저가 부담하는 광원장치의 유지비용이 적외선을 사용하는 기존 장치의 경우 연간 3백만엔 정도였으나 엑시머 레이저를 사용하는 장치에서는 1천만엔으로 급증했다』고 인정했다.
사실 반도체업체에 이 정도의 추가부담은 호황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16MD램 시황악화로 64MD램 가격이 동반하락해 연초의 절반수준 가격대를 형성함에 따라 대부분의 반도체업체들은 『64MD램 사업은 현상황에서도 수익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더이상의 추가부담은 있을 수 없다』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에서는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니콘측은 『반도체업체들이 광원장치의 유지, 보수비 등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술상의 치명적인 결함은 전혀 없다』며 『현단계에서는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가 64MD램 양산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스테퍼 출하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볼 때 일부 미미한 문제들만 극복하면 64MD램 양산은 현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로 원만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반도체업체들이 실제로 걱정하고 있는 것은 2백56MD램 이상급 제품양산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64MD램 생산에도 이 정도의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2백56MD램 이상급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반도체업체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반도체업체들은 99년 실용화를 목표로 2백56MD램, 2001년 실용화를 겨냥해 1GD램 제조기술 확립을 위한 실험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스테퍼에 요구되는 정밀도는 더욱 엄격해진다.
현재 2백56MD램 제조방법으로는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 이외에도 몇가지 방법이 검토되고 있다. 엑시머 레이저 다음으로 유력시되는 기술은 미세한 전자광선(EB)으로 한 개 한 개의 회로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실용화된 기술만을 놓고 비교할 때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는 1시간에 70장의 웨이퍼를 처리할 수 있는 데 반해 전자광선을 이용한 스테퍼는 1시간에 20장을 처리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반도체업체들이 2백56MD램 양산에도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를 이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의견도 세계 반도체 장비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니콘 제품에 대한 최근의 불신사태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니콘측은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니콘은 2백56MD램 양산에도 대응한다는 방침 아래 엑시머 레이저 스테퍼에 사용하고 있는 레이저광선의 종류를 현재의 불화크립톤형에서 불화아르곤형으로 전환해 더욱 미세한 가공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제품 출하시기를 99년, 양산은 2001년으로 잡고 있어 2백56MD램을 99년부터 양산한다는 반도체업체들의 계획에는 부응하지 못한다. 또 레이저광선의 종류는 바뀌어도 같은 엑시머 레이저를 사용하는 이상 광원장치 유지비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 것은 물론이다.
반도체 주력제품인 D램은 거의 3년에 한번씩 집적도가 향상돼 스테퍼 등 제조장비도 이에 맞춰 진화돼 왔다. 그러나 64MD램 전환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스테퍼 관련문제들은 반도체업체가 계획하고 있는 집적도 향상 스케줄을 제조장비업체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스테퍼시장의 50%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니콘의 이러한 제반 문제들은 가뜩이나 마음이 급한 반도체업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심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