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가전시장에서는 디지털 캠코더의 판매는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정작 그 기기를 작동시켜 녹화하는 데 사용하는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는 공급이 크게 달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전자기계공업회(EIAJ) 예측에 따르면 올 일본 국내 디지털 캠코더 수요는 전년보다 1.7배 많은 85만대로 늘어 아날로그방식의 캠코더(52만대)를 크게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는 최근 들어 극심한 공급부족현상을 보이고 있다. 가전양판점의 경우 대부분이 「사람당 2개까지 구입, 품절시 입하일은 미정」이라는 벽보를 내걸고 있다. 심지어 일부 매장에선 자기 상점에서 디지털 캠코더를 구입한 사람에게만 테이프 2개를 파는 「고객선별」 판매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사실 디지털 비디오테이프의 공급부족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디지털 캠코더가 등장하기 시작한 지난 95년 이래 만성화돼있는 현상이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캠코더가 아날로그방식에서 디지털로 급속히 이행되면서 올 들어 공급부족이 훨씬 심화됐고, 운동회 등 이벤트가 몰려 1년 중 캠코더 수요가 가장 많은 가을 이후에는 품귀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를 생산하는 곳은 소니와 마쓰시타 두 곳뿐이다. 이들 두 업체는 현재 휴일에도 공장을 가동하며 공급확대에 힘쓰고 있으나 공급부족은 전연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디지털 비디오테이프의 수급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은 우선 테이프 제조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디지털 비디오테이프는 8㎜나 VHS 등 아날로그 비디오테이프와 달리 「진공증착(眞空蒸着)방식」이라는 제조방법을 이용해 만든다. 테이프 제조에는 자성체를 테이프에 바르는 「塗布(도포)방식」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이것을 이용하면 디지털 비디오테이프에서 요구되는 정밀도를 확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진공증착방식은 지금까지 일부 고급 테이프에만 사용돼 그 장치 역시 도포방식 장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적게 보급돼있다.
더구나 디지털 비디오테이프 제조용 진공증착장치는 제조업체가 1개뿐이어서 공급받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주문해 물건을 받기까지 기간도 길다. 유일한 제조업체인 일본진공기술에 따르면 장치 수주에서 납품까지의 기간이 약 9개월이나 된다.
디지털 캠코더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소니와 마쓰시타간의 판이한 사업전략도 디지털 비디오테이프 수급 불균형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니는 지난 95년 9월 마쓰시타와 함께 디지털 캠코더사업을 시작했지만 그 이후에도 8㎜ 신제품을 계속 내놓는 등 아날로그방식 사업을 줄이지 않았다.
소니가 아날로그에 집착한 것은 이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방송용의 경우 95년 당시 시장점유율이 90%에 달했다. 이런 소니로서는 캠코더시장의 디지털화가 달갑지 않은 것이고, 때문에 디지털 비디오테이프 제조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아날로그방식 캠코더에서 소니에 사실상 완패한 마쓰시타는 만회를 위해 디지털방식으로의 이행을 서둘러 현재 캠코더 전체의 80%를 디지털방식으로 구성하고 있고, 디지털 비디오테이프 시장에선 7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즉 소니와 마쓰시타간의 이같은 입장차이는 디지털 비디오테이프 시장이 마쓰시타 한 업체에 의존하는 구조를 낳고, 결과적으로 공급물량이 절대적으로 달리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뒤늦었지만 올 들어 소니도 비디오테이프의 극심한 수급 불균형이 디지털 캠코더의 판매확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테이프 생산량을 배증하는 등 증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 제조장치가 들어갔다고 해서 생산량이 바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품질을 요구하는 디지털 비디오테이프의 생산력은 품질을 확인하면서 서서히 높여 풀가동에 들어가기까지는 약 반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디오테이프의 부족사태는 적어도 내년 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때까지 소비자들이 테이프가 절대 부족한 디지털 캠코더를 이전처럼 구입할지 의문이다.
<신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