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통화위기에서 촉발된 아시아지역의 경기침체가 그동안 고속성장세를 구가해 오던 이 지역 PC시장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환율 급등, 주가 폭락,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제불안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잇따라 정보기술(IT)분야에 대한 투자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PC를 비롯한 하이테크업체들에게 아시아시장은 지난 3, 4년간 미국이나 유럽시장의 부진을 보전해 줄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더구나 지난 7월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아시아국가들의 금융위기가 8, 9월 들어 더욱 심각해졌을 때만도 하이테크업체들의 입장은 느긋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최근 이들 업체의 심기도 편안치 못하다.
세계 최대 칩업체인 인텔은 지난 3, 4분기 아시아지역(일본 제외) 매출이 작년 동기비 10% 증가에 그친 12억 달러를 기록, 미국 및 세계시장에의 각각 39%, 20% 신장률에 크게 못미쳤다.
휴렛패커드(HP)의 한 간부도 특히 동남아지역의 판매 성장률이 그동안 연평균 20%대에서 내년에는 10%나 그 이하로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만큼 시장상황이 낙관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또 경제침체에 따른 소비자들의 구매심리 위축도 가정용 PC시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제품이나 부품을 수입하는 경우 화폐가치의 폭락으로 수입단가가 높아지게 되고 이는 곧바로 소비자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주머니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아시아 최대시장인 일본의 경우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부진으로 97회계연도 2, 4분기(7∼9월)에는 PC출하량이 작년동기비 6%가 떨어진 1백66만대를 기록, 4년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물론 시장조사업체인 IDC에 의하면 이 기간에 아시아(일본 제외)시장은 금융위기 등의 불안요인에도 불구하고 작년동기비 23% 증가, 성장률은 작년보다 떨어졌지만 호조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경제불안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데다 중국 등의 수요가 떠받쳐 줌으로써 가능했던 것으로 4, 4분기 들어서는 둔화현상이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게 IDC측의 분석이다.
또 아직까지 특별한 동요가 없었던 중국 역시 동남아 금융위기의 불똥을 막기 위해 안정적인 통화정책방안을 모색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아시아 PC시장은 이러한 금융위기가 얼마나 빨리 진정되고 경제도 안정세를 찾느냐에 따라 재도약의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PC를 비롯한 아시아 하이테크시장이 그리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PC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여 수입단가 상승을 상쇄할 수 있고 각국 정부도 최근의 경제위기와 상관없이 IT에 대한 투자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말레이시아는 자국을 모두 온라인을 연결하는 멀티미디어 슈퍼 코리도(MSC)프로젝트에 최근 1억링킷(3천만 달러)을 투입키로 결정했다. 마하티르 모하매드 총리가 야심적으로 추진해 온 MSC프로젝트가 자국 화폐의 가치하락으로 늦춰질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싱가포르도 향후 5년간 학교의 네트워크화에 13억 달러를 투출할 계획이어서 이러한 각국정부의 IT분야에 대한 투자의욕이 아시아 하이테크시장의 재도약을 보장해 줄 원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구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