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91)

『조금 더 들어가면 수직통로가 나옵니다.』 심재학 대장이 말을 계속했다.

『도면에는 꽤 깊게 설계되어 있던데요.』 『그렇습니다. 70미터가 넘습니다. 그 아래 또다른 통신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수직통로는 무엇 때문에 만들어져 있지요?』 『여러개의 통신구가 겹쳐지는 곳에 설치합니다. 이쪽 선로에서 다른 방향으로 분기되어야 할 때 수직통로를 이용하여 통신 케이블을 다른 루트로 돌리게 됩니다.』 한동안을 들어섰지만 여전히 통로 양쪽으로 늘어진 케이블은 수천 가닥으로 낱낱이 늘어져 있었다. 평상시 통신용 케이블은 심선을 보호하기 위해 알루미늄관으로 둘러싸고 그 위에 가연성 피복제를 입혀 제조되어 있다. 그 가연성 피복제에 불이 붙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심한 연기와 불꽃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그 불꽃과 연기는 통신구의 유일한 통로인 맨홀을 통하여 밖으로 솟구쳤을 것이다.

『김 실장님, 이 케이블에 불이 붙으려면 상당한 발화물질이 있어야 할텐데, 예측되는 것이 있습니까?』 심재학 대장이었다.

『인위적인 화재가 아니라면 특별하게 발화될 것은 없습니다. 평상시에 화재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고 있고, 이 부근에는 전등을 밝히기 위한 전기선밖에는 없습니다.』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아직도 남아있는 화재 열기와 등에 짊어진 산소통의 무게 때문이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하통로.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내리는 케이블을 헤치고 좀더 나아가자 수직 통로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층계.

맨홀로 들어서기 위해 내려섰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철 층계였다. 이 수직 층계를 내려서다보면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을 따라 설치된 통신구가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 아래에는 각 통신구에서 흘러나온 물을 모으는 저수탱크나 나오게 될 것이다. 지하에 설치된 통신구에서 흐르는 물을 모아 외부로 퍼내기 위한 저수탱크였다.

층계는 꼬불꼬불 이어져 있었고, 내려갈수록 열기가 더 심했다. 계단을 따라 수직으로 설치된 통신 케이블이 엿가락처럼 녹아내려 있었다. 배가 터진 채로 수천 가닥으로 늘어진 동(銅)선이 건드릴 때마다 후두둑 후두둑 부서져 내렸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김지호 실장은 다시 한번 현기증을 느껴야 했다.

『김 실장님, 이것좀 보시오. 여기부터는 케이블이 완전히 연소되지 않았소. 발화지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