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호 실장은 타버린 분전반을 자세히 살폈다.
분전반 내부에서 일어난 화재가 분명했다. 각종 전자회로로 구성되어 있는 기판이 열을 받아 녹아있었고, 분전반으로 인입된 전력선도 불타 있었다.
순간, 김지호 실장은 녹아내린 전자회로의 기판에서 독수리가 새겨진 칩 하나를 보았다. 불에 타 많이 소손되었지만 분명한 독수리였다.
독수리. 통제실 자동절체시스템의 메인보드에도 꽂혀 있던 독수리 형상의 칩.
김지호 실장은 그 독수리 형상이 그려진 칩을 자세히 살폈다. 희미했지만 칩의 고유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일한 번호였다. 통제실의 자동절체시스템에 꽂혀 있던 독수리 칩과 은옥이 1호 위성과 2호 위성에 꽂혀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던 칩의 고유번호와 동일했다.
등줄기로 소름이 끼쳤다. 흥건히 젖은 땀 줄기가 순식간에 말라붙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독수리 형상. 김지호 실장은 그 독수리 형상이 그려진 칩을 한동안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다 찍고, 촬영 끝났으면 철수합시다. 발화지점은 정확하게 파악이 되었으니까, 화재 원인은 전반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밖에 나가서 분석하기로 하고 이제 철수합시다.』 심재학 대장의 말대로 발화지점은 명확했다. 하지만 김지호 실장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독수리, 통제실의 자동절체시스템과 1호와 2호 위성에 꽂혀 있던 독수리 형상의 칩을 그들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김지호 실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내려왔던 철 계단을 다시 오르면서 독수리 형상을 떠올릴 뿐이었다.
의문점은 또 있었다. 결코 분전반의 화재로 생긴 불길이 통신케이블에 쉽게 옮겨 붙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한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지만, 처음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강하고 지속적인 불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장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헉헉거리며 맨홀을 빠져나왔을 때 준비를 다 갖춘 복구요원들과 함께 김 대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며 물었다.
『수중모터 분전반에서 화재가 발생했어. 자세한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연구소의 김창규 박사와 연결좀 해주게나.』 『김창규 박사요?』 『그래. 지금 연구소에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