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는 이번 IMF의 긴급자금 지원으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작업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장기적인 불황으로 기업생존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전사업에 대한 정리 및 조직축소, 인력감축 등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전업체들이 최근 IMF라는 전혀 생소한 조직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들의 지원조건 여부에 의해 기업 스스로 자구노력이 구체화되고 이에따라 자신들의 앞날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실제 가전산업계에서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미 IMF의 긴급금융 지원에 따른 영향 분석작업과 함께 대처방안 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와 IMF의 지원조건이 타결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경제주체의 하나인 기업은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정부의 방침이나 멕시코나 태국 등 기존 IMF의 지원을 받았던 국가들에게 IMF가 일반적으로 요구했던 내용을 기준으로 기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상황변화를 주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반적으로 IMF의 긴급자금 지원은 국가신뢰도의 하락으로 해외시장에서의 직접 차입이 불가능하고 유동성 부족으로 은행을 통한 간접 차입도 어려워 자금경색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특히 전 세계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가전업계로서는 신용 하락으로 외국 현지에서 외환을 끌어쓰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본사 차원의 지원이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어 자금난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데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 수요 감소에 따른 내수부문의 판매부진과 외채원리금 상환부담 가중, 부품 수입에 따른 대금조기 결제 압력 등이 거세질 것으로 보여 판매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가전업계를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IMF가 자금지원 조건으로 가전 3사가 주도하고 있는 가전산업의 유사업종간 통폐합 및 업종 전문화를 강력히 요구할 경우 가전업계 스스로 이에 상응하는 대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대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에 직면한다면 우선 세계 가전시장에서 국내 가전산업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이며 과잉투자 여부 등에 대해 집중적인 실사를 받게 되며 그 결과에 따라 가전업계의 대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돼 각 기업이 아닌 국내 가전산업 전반적인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하고 이에따른 시장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IMF가 자금을 지원하면서 정부의 재정정책 등을 통해 국내 전자산업에 대해 강력한 통제를 할 것은 분명하지만 상대적으로 가전산업 자체에 대해서는 규제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즉 IMF가 국제기구이지만 돈을 낸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입김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 국가의 기업들이 이해가 첨예하게 물려 있는 자동차, 반도체 등의 분야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같은 논리는 IMF의 전례에 비추어 상당히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러나 국내 가전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 3사가 국내 3대 그룹의 계열사인데다 자동차, 반도체 등은 이들 그룹 주력업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비록 가전산업이 IMF의 직접적인 통제로 부터 피할 수는 있겠지만 그룹의 주력 업종을 살리기 위해 그룹차원에서 강도높은 구조조정 작업이 불가피하고 그 여파는 주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자동차나 반도체 등이 아닌 가전에 집중될 것이 분명해 가전산업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을 받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가전산업으로서는 그룹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조정작업의 희생양이 될 공산이 어느 업종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가전업계 중 대기업들이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작업에 따른 사업축소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반면 매출이 대부분 1천억원 미만인 중소 가전 전문업체들은 IMF의 구제금융이 직간접적으로 연쇄부도를 야기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이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경우 금융시장의 재편이 요구돼 종금사를 비롯한 시중은행들의 인수, 합병 등이 진행될 때에는 이들 금융기관의 문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중소업체 경영자들은 앞으로 긍융기관으로 부터 돈을 빌린다는 생각 보다는 이들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의 자구를 위해 앞으로 거세질 기존 대출금의 조기상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또 대기업들이 한계사업에 대해 과감히 정리할 경우 그동안 대기업에 OEM으로 제품을 대량 납품하면서 사업을 영위해온 중소 전문업체들로서는 연쇄 부도의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구노력을 통해 명맥을 이어왔던 중소 가전업체들이 이같은 예정된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할 만한 대책을 수립할 수도 없는 처지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중소가전업체의 한 경영자는 국가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정부 및 금융기관들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다고 현재의 입장을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IMF의 통제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IMF경제하에서 가전업계는 스스로 고단위 처방전을 마련, 시행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전개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당장 과거 성장위주의 경영에서 탈피, 매출을 스스로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현안에 매달려야 한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운영해왔던 사업이나 비록 단기적으로는 적자이지만 미래지향적인 사업들도 이제는 과감히 포기하거나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인력절감 및 투자억제 등은 필수적으로 수반될 것은 뻔하다.
또 경기 침체로 내수부진이 장기화하고 여기에 시장개방으로 외산제품들이 관세장벽없이 대거 유입될 경우 가전산업계는 내우외환의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한다.
이같은 엄청난 환경변화 속에서 가전업계가 세울 수 있는 대응방안이라는 것은 극히 무력하기만 하다. 가전업계가 일차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문은 외환문제의 해결이다. 근본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단기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있는 제품을 개발, 성장시장을 공략함으로서 수출을 극대화해 현재의 외화난을 타개한다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결제통화의 변경이나 부품구매선의 변경, 수출미회수채권의 조기회수 등을 강력히 추진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삼성그룹이 최근 재무관리의 원칙을 손익이 아닌 현금흐름 개선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겠다고 공식발표 한 것도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 출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사업과 직결되지 않은 투자를 최대한 억제하고 투자의사 결정에 앞서 과거보다는 더욱 철저한 경제성 검토작업이 반드시 선행될 것으로 보여 가전업체들의 미래를 대비한 과감한 투자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IMF경제는 국내 가전산업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것은 업체별로 경쟁력있는 사업을 선택, 집중 육성하는 형태로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전자 3사에 의해 주도돼온 국내 가전산업계는 그만큼 근본적인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