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95)

공중전화 앞에 늘어선 줄은 그리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맨홀 주변은 분주했고 도로 한복판에서는 복구 차량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드럼에 감긴 케이블을 맨홀 속으로 넣는 모습이 보였다.

현미는 그 모습을 보면서 형부를 떠올렸다. 통제실의 김지호 실장. 우리나라 통신망에 관한 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지만 이러한 사고가 날 때마다 늘 바쁜 형부였다.

어쩌면 이곳에 오게 될지도 모르는데.

현미는 통신사고가 나면 그 현장에까지 출동하여 사태를 수습하곤 했던 형부를 떠올리며 어쩌면 이곳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로로록, 또로로록.」 여전히 호출신호는 가고 있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재발신 버튼을 누르고 번호를 눌렀다. 여전히 무응답. 신호만 갈 뿐 응답이 없었다.

순간 현미는 혜경의 남자친구를 떠올렸다.

결혼을 약속한 그 친구의 부모를 만나기로 한 것이 바로 어제였고, 어제 늦게나마 연락이 되어 만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과정에서 은행의 전화가 고장이라서 연락을 못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닌데, 아무 연락도 없이 회사를 나오지 않을 혜경이 아닌데.

현미는 혜경을 잘 안다. 아주 잘 안다. 일과 예의에 관한 한 신뢰할 수 있었다. 요즈음의 젊은 여자들과 달리 혜경은 예의바르고 자기 일에 열심이었다.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주변의 일까지 솔선수범하여 그 미모와 함께 성실성도 인정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오늘과 같이 아무런 연락 없이 출근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지각 한번 하지 않은 혜경이었다.

현미는 빠져나오는 공중전화 카드를 빼들고 다시 은행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전산망은 오프라인 상태. 은행 정문에는 통신구 화재로 인한 전산망 장애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 다른 곳을 이용해 달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이 차장님, 전화를 해보았는데 신호가 가는 데도 받지를 않습니다. 집에는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 어제 함께 퇴근하지 않았나?』

『예. 어제 같이 퇴근했어요.』

『퇴근하면서 무슨 이야기 없었나?』

『아무 이야기 없었습니다.』

『어찌된 일이지. 오늘 중으로도 온라인이 회복되기가 힘들다고 해서 어제 마감한 것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할 텐데, 어쩌지.』

『전화가 고장이라서 연락을 못하고 있을 거예요.』

『현미씨, 혜경씨 집이 어딘지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