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99)

『언젠가 내가 이야기 해주었지 않소? 이곳은 우리나라의 전기통신을 처음으로 운용한 기관인 한성전보총국(漢城電報總局)이 자리했던 곳이오. 1885년 9월 28일이었소.

그 어떤 신문물보다 일찍 도입된 전기통신이 시작된 역사 깊은 곳이오.』

김지호 실장은 진기홍 옹으로부터 통신 역사의 새로운 사실들을 늘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진기홍 옹이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통신 케이블이 맨홀 속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고 있었고, 복구요원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 광화문 네거리 부근에서 전기통신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한성전보총국의 현판을 걸고자 하는데 이전에 자리하고 있던 사역원(司譯院)의 현판을 어떻게 해야하는 가를 정부에 문의한 기록으로 알 수 있소. 사역원이라는 곳은 번역을 담당하던 기관이었소. 옛 문헌에 사역원의 위치가 세종로 70번지로 나타나 있는데, 현재 저기 보이는 세종문화회관과 세종로 공원이 자리한 뒤쪽에 해당하오. 그곳은 공원이 조성되기 전까지 광화문 전화국으로 활용되었던 곳이오. 현재 정보통신부로 이름이 바뀐 옛 체신부자리였기도 하오.』

팔순의 노인.

하지만 통신역사와 사료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진기홍 옹은 정열적으로 변하곤 했다. 정확한 역사 인식아래 통신의 역할에 대한 확신이 그를 정열적으로 만들곤 하는 듯 했다.

『이 부근은 그 이후에도 조선전보총국(朝鮮電報總局)이 들어섰고, 이어 농상공부 체신국, 한성전보사, 한성전화소, 한성우체사, 통신원 등이 자리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통신의 요람지였소.』

진기홍 옹은 한 개의 드럼에 감겨져 있던 통신 케이블이 다 들어가고, 이어 새로운 드럼의 통신 케이블이 다시 맨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러한 통신의 요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이 안타깝소.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통신이 시작된 바로 이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 더욱 안타까운 것이오. 특히 역사를 아는 사람은 더욱 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 것이오. 빨리 복구되고, 정상으로 회복 되었으면 좋겠소.』

『선생님, 그런데 이번 사고에 이상한 점이 몇 개 있습니다.』

『어떤 점이오?』

『이곳 광화문 맨홀의 화재 뿐만 아니라 제가 근무하는 통제실의 자동절체 시스템에도 똑같은 시간에 고장이 발생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