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것은 정치판만이 아니다. 사상 최초의 「무차별 경쟁」을 벌이고 있는 통신서비스업체들도 조그마한 공동의 이해관계만 발생하면 피아(彼我)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의외의 마케팅 짝짓기에 나서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의 파트너 고르기는 서로의 서비스 영역을 파괴하면서까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진행돼 더욱 화제를 뿌리고 있다.
제휴연대가 가장 활발한 것은 이동전화분야. 처음에는 개인휴대통신(PCS)의 출범에 맞춰 수성입장인 휴대폰업체들과 도전자인 PCS업체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서비스를 홍보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는 진영간 싸움으로 시작했다. 이때는 물론 양진영의 공동이해가 엇갈려 「업종별 편가르기」라는 전통적 짝짓기였다.
휴대폰과 PCS진영의 공방이 주춤해지자 이번에는 PCS 개별사간 합종연횡이 시도됐다. 대표적인 것이 한솔PCS와 한국통신프리텔이 같은 진영인 LG텔레콤을 따돌리고 전격적인 로밍합작에 성공한 것. 경위와 어찌되었든 「LG가 이지메 당했다」는 시각이 따라붙었다.
가장 시달림을 많이 당한 것은 이 시장을 「철벽방어」하고 있는 지배적 사업자 SK텔레콤. 강자를 쓰러뜨리기 위한 후발주자들의 짝짓기는 급기야 업종의 벽을 넘어서 진행됐다. 삐삐업체인 나래이동통신과 PCS사업자인 한국통신프리텔이 「공동의 적」인 SK텔레콤을 겨냥, 스포츠 마케팅부문에서 손잡았다. 나래와 SK의 농구경기가 있었던 지난 7일 양사는 공동응원단을 구성, SK 격파의 목소리를 높였고 나래팀은 아예 016한통프리텔 식별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가장 극적이면서 파격적인 연대는 최근 이루어진 한국통신과 데이콤의 합작. 데이콤 출범 당시부터 사사건건 부닥치면서 「견원지간」으로 치부되는 이들 양사가 「IMF시대 통신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 값비싼 이동전화보다 유선전화를 활용하자」는 광고를 내보냈다. 물론 유선전화와 이동전화의 요금비교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처럼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경쟁사간 무차별 짝짓기는 「실속」 앞에서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냉혹한 시장질서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내년에도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