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컴팩사가 생산하는 컴퓨터의 공장조립 단계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바이러스에 대해 러시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공식 폭로한 나라는 러시아가 아닌 일본으로, 컴팩의 일본지사장인 히구치 야쓰유키는 대만공장을 거쳐 지난 9월 일본에 들여온 컴팩사 컴퓨터 「프리자리오 2210」 10대 가운데 1대가 공장에서 바로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발표했다. 이 바이러스는 컴퓨터가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를 감염시키는 시스템 차원의 바이러스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일본에서 발견된 바이러스에 대해 러시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컴팩사가 바로 러시아의 국가자동화시스템의 첫번째 단계인 투표집계 전자시스템 「비보리」를 설치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비보리는 투표집계뿐 아니라 선거 이외 기간에도 러시아 정부의 통신망과 정보망을 지원한다.
비보리는 실제 지난 95년 실시한 두마선거와 지난해 여름의 대통령선거에 사용됐다. 프로젝트 창안자들은 유권자의 투표를 빠르고 정확하게 집계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 필요한 컴퓨터시스템을 PC업계 최대 업체인 컴팩에 주문했다. 선거는 만족스럽게 진행됐고 러시아어로의 번역에서 컴팩이라는 이름은 「공존과 품질」처럼 해석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컴팩사 컴퓨터에 대한 일본 컴팩의 자체 공고가 나온 것이다. 만일 일본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바이러스가 비보리에 유입된다면 그 혼란은 이루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일본이 러시아와 컴퓨터 유통경로가 다르고 프리자리오는 국가자동화시스템 비보리와 개발목적이 다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컴팩사가 더 이상 기술의 안정성을 1백% 보장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국가자동화시스템 비보리는 선거가 없는 기간에도 국가이익을 위한 정보방출에 활용된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정부는 첫 번째 단계에서 1억4천만달러나 드는 값비싼 기자재를 설치한 것이다.
결함발생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실제 연방정부 통신·정보국의 홍보담당자인 미하일 베네츠코프스키는 『정부 필요에 의해 들여오는 모든 기술은 특수한 검증을 거친다』고만 말할 뿐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없다.
러시아인들을 더욱 격분시키는 것은 컴팩사 태도다. 컴팩사는 일본지사의 공고가 있기 한달 전부터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인지했던 것으로 보이나 내내 침묵했다. 그리고 10월 초 컴팩사의 회장인 엑하르드 파이퍼는 모스크바에 와서 블라디미르불가크 부총리를 만났지만 이 자리에서 국가자동화시스템 비보리와 관련된 사항은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면담은 주로 전체적인 컴퓨터화의 전망에 대한 것이었다.
컴팩사 회장은 자신들이 설치한 프로젝트의 지속적인 운영여부에는 관심이 없고 이후 수천만달러 혹은 수억달러에 다다르는 계약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3천개 지역선관위와 그 하위의 9만3천개 투표구의 컴퓨터화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컴팩사가 자신의 본국 정부와는 결코 그런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러시아인들의 시각이다.
아직까지 컴팩사가 설치한 러시아 국가자동화시스템 비보리에서 유권자들을 흥분시킬 만한 요소는 없었다. 선거가 없는 기간 이 시스템은 비공식적 집계만을 위해 활용된다는 것도 그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기회에 국가자동화시스템 전반과 특히 비보리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러시아 언론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