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슈퍼컴 3基 러시아 판매.. 美·러 「외교스캔들」 비화

컴퓨터게임과 컴퓨터를 둘러싼 게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컴퓨터게임은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전환을 하게 해주지만 컴퓨터를 둘러싼 게임은 종종 게임 참여자들을 함정으로 이끌고 주변인들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뉴욕타임스」지에 의해 추적돼 미국에서 문제가 된 다음 러시아로 건너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미-러간 슈퍼컴 스캔들은 21세기에 본격화할 컴퓨터를 둘러싼 국가간 경쟁의 서막을 예고하고 있다.

이 스캔들의 중심에는 거대 컴퓨터 회사인 IBM이 있다. IBM은 러시아의 원자력센터에 슈퍼컴퓨터를 파는 과정에서 미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중개인과 유령 인물까지 내세워 미연방 법률을 어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연방 법률은 슈퍼컴퓨터의 일부 품목에 대해 사전승인 없이 러시아의 민간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그 판매행위가 고의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즉, 판매자가 누구에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자신의 상품을 파는지를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면 처벌대상이 된다. 문제의 슈퍼컴퓨터는 핵실험을 모델링하고 핵무기고의 확실성과 안전도까지 검증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컴퓨터 판매는 작년 9월 핵실험 전면금지 협약에 대한 협상과정에서 이 협약에 서명하면 슈퍼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다는 미국측의 「암시」를 러시아가 잘못 이해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측은 러시아에 슈퍼컴퓨터 판매와 관련된 그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모스크바는 자신들이 이해한 미국의 「암시」를 전제로 IBM에 컴퓨터를 가져오라는 암시를 주었고 IBM은 이를 적절히 이해했다. IBM에 의해 만들어진 슈퍼컴퓨터는 독일에서 러시아가 아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쉬플공항을 향했고 거기에서 다시 러시아의 설치장소인 「아르자마스16」으로 보내졌다.

미국 컴퓨터회사들은 「아르자마스16」에 「EVM」 슈퍼컴을 파는 것이 곧바로 다른 아시아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임을 알았고 여기에 IBM이 당첨된 것이다. 이 거래에서 중개역할을 한 모스크바의 「제트 인토 시스템스」의 대표 예브게니 샤플뤼긴에 따르면 IBM은 「아르자마스16」을 미국의 뉴멕시코州에 있는 유명한 「로스 알라모스」 핵실험실과 같은 비중으로 대했다.

미국 정부는 이 판매 컴비네이션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러시아의 원자력부장관 미하일로프가 지난 1월 『러시아는 두 개의 슈퍼컴퓨터 시스템을 확보했다』고 공개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때 세번째 슈퍼컴퓨터 시스템을 이미 보낸 IBM측은 당황하여 컴퓨터를 도로 찾으려고 시도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중개역할을 했던 인물들은 IBM측의 협조요청을 거부했으며 러시아의 국가안보이익과 관련되는 문제라는 이유로 증인들을 심문하려던 미국기관들의 노력도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이 과정에서 EVM에 관한 사항은 미, 러간의 외교적 스캔들로 불거져 나왔다. 미 행정부는 자신들의 독자적 채널을 통해 슈퍼컴퓨터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실패했다.

러시아에 슈퍼컴퓨터를 판매하는 것이 핵실험 전면금지협약 위반과 비교하면 「가장 하찮은 악」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미국 내에는 없지 않다. 그렇지만 핵문제 및 군사기술계획에서 러시아의 비공개성에 불안을 느끼는 보수적 인사들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고의 확실성을 검증하기 위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과 새로운 유형의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 사이의 장벽은 쉽게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냉전시대의 군비경쟁은 이제 컴퓨터를 이용한 국비경쟁 혹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누가 더 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가로 바뀌었다고 보면서 가장 강력한 잠재적 경쟁국인 러시아에 슈퍼컴퓨터를 넘긴 IBM의 행위를 비난했다.

현재 러시아가 보유하고 잇는 슈퍼컴퓨터 시스템은 세 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아르자마스16」의 슈퍼컴퓨터 이외에도 이미 두 개의 슈퍼컴퓨터 세트를 더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는 실리콘 그래픽스가 판매자였는데 「첼야빈스크70」에 설치됐다. IBM이 주도한 두번째 슈퍼컴퓨터의 설치장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세번째 「아르마자스16」 슈퍼컴퓨터는 초당 5백억개의 연산능력을 갖는 컴퓨터를 보유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희망을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아르자마스16」의 컴퓨터가 미국이 확보한 초당 1천억개 이상의 연산능력을 갖는 컴퓨터와 같은 최고의 컴퓨터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서로 결합시키면 자신의 잠재적 회로에 의해 대단히 강력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슈퍼컴퓨터 판매를 둘러싸고 불거져 나온 이번 외교적 스캔들에 대한 러시아측의 입장은 명확하다. 러시아 원자력부의 시각은 IBM사에서 컴퓨터 한 세트를 구입했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인테르팍스」에 보낸 공문에서 원자력부 장관은 슈퍼컴퓨터를 구입해 핵실험 전면금지 협약의 틀 내에서 핵탄약의 안정성을 높이고 핵탄약고의 저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파손상태에 대한 계산을 실행시키는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기자재 구입과정에서 미국의 수출관리 규정을 비롯한 미국 법률을 추호도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인들이 러시아가 슈퍼컴퓨터를 핵무기 제조에 활용할 위험성을 우려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즈베스티야」지는 미국 핵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헤 이 슈퍼컴퓨터들의 도움없이도 다른 컴퓨터들을 이용해 러시아는 이미 자신의 핵무기고를 세웠음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