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10)

『이곳에는 많이 와 보셨습니까?』

『아니요, 처음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지내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어떻게 가장 친한 직원이 사는 곳도 몰랐습니까? 엎드리면 코닿을 곳인데.』

『특별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퇴근할 때도 이리로 오지 않고 늘 저 아래 시청 쪽으로 내려갔었습니다. 거기서 덕수궁 돌담길 쪽으로 되돌아 왔는가 봅니다.』

『직원들도 아무도 몰랐단 말인가요?』

『네, 저희 은행에서는 아무도 혜경 씨가 이곳에서 지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고의로 알려주지 않은 것인가요?』

『그 사항은 모르겠습니다만, 비상연락망에도 기록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현미는 조 반장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계면쩍었다. 아무리 죽은 여인이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육체를 여기저기 들추고, 사진을 찍어대는 형사들이 야속하게 여겨졌다.

벌거벗은 여인의 육체.

현미는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광화문 네거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고, 한복판 맨홀에서는 여전히 복구요원과 차량들이 분주했다. 통신 케이블을 맨홀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이제 끝난 듯했다. 어제 오후, 맨홀에서 불꽃이 하늘높이 치솟는 모습을 바라보던 혜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꽃에 취한 듯 넋을 잃고 바라보던 혜경. 이제 혜경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미는 어제께만 해도 아무일 없이 잘 지냈던 혜경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눈물도 흐르지 않을 만큼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믿기지 않는 현실.

촛불. 현미는 독수리 그림 아래 놓여져 있는 촛불의 흔적이 다시 시야로 들어왔다. 그렇게 촛불을 좋아하던 혜경. 다 타버리고 촛농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 옆으로 유방과 둔부가 유난히 도드라진 테라코타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방과 둔부에 때가 타 반질반질 윤이 나는 테라코타가 혜경에게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현장검증 다 끝냈으면 병원으로 시신 옮겨. 부검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말이 끝나자마자 준비했다는 듯 들것에 실려나가는 시신을 바라보며 조 반장이 현미에게 물었다.

『혹시, 바로 연락 가능한 가족들이 있을까요?』

『아니요. 저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친구는 어디 있습니까. 연락이 가능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