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업체들 「98년엔 덤핑수주 없다」

『덤핑수주의 개선없이는 공멸뿐이다.』

경기위축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98년 시장을 코앞에 두고 시스템통합(SI)업체들이 서로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SI업계의 올 매출을 보면 선발업체들의 경우 3천억∼4천억원대에서 많게는 1조원을 육박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그러나 이들 업체의 경상이익은 매출의 2∼3%를 결코 넘지 못한다. H사와 같은 특정업체의 경우 오히려 적자다. 이같은 현상은 백화점식 영업을 해온 대형업체일수록 더욱 심하다.

대표적인 고부가치산업으로 꼽히는 SI업계의 경상이익이 일반 제조업체의 연평균 경상이익률인 10% 정도에도 크게 못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제살을 깎아먹는 덤핑수주 때문이다.

대다수의 SI업체들은 민간수요와 수탁관리(SM)부문에서는 웬만한 수준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공공시장에서는 턱없는 가격의 수주전쟁을 일삼아 큰 폭의 적자를 낳았다. 최근 공정거래위에서 문제를 삼은 「인천지역정보화사업」은 SI업계 덤핑관행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총 1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2백90만원에 수주한 H사는 물론 입찰시 1천9백만원을 제시한 D사, 3천만원을 써낸 S사 역시 덤핑의 오명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이처럼 SI업체들의 엄청난 덤핑이 가능했던 것은 이번 「희생」으로 다음의 더 큰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입찰관행이 큰몫을 했다. 구조적으로는 그동안 모그룹에서 나온 수주물량의 대가로 인력관리비를 포함하는 조건들을 달아 최대 1.6∼1.9배까지 받는 등 그야말로 짭짤한 내부장사를 해온 것도 한 요인이 됐다. 결국 계열사들이 밀어주는 돈으로 공공시장의 적자 폭을 메워나간 셈이다.

문제는 98년이다. 내년에도 이같은 덤핑수주 관행이 이어질 경우 이제 막 개화기에 접어든 SI시장의 질서왜곡은 물론 해당업체들의 생존 자체도 의문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98년 시장은 외견상으로는 수주 덤핑현상이 이어질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관련업체들의 덩치는 더 커진 데 반해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따른 투자분위기 위축으로 인해 먹을 수 있는 파이(시장)는 작아질 것이 확실시된다. 그동안 마구잡이 인력확충을 꾀해온 SI업체 입장에선 변동비라도 건져야 한다는 심정으로 수주확보에 진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아직까지 덤핑수주 개선에 무게중심을 두는 시각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덤핑수주로 인한 채산성 보전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 주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모그룹 자체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다 계열사간 경영의 투명성를 강조하고 있는 IMF체제에서는 더이상 밀어주기식의 지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SI업체들이 내년에 한결같이 「내실경영」을 강조한 것도 이같은 시장환경을 의식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모처럼 조성된 업체들의 과당경쟁 불식 분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공공물량의 발주처인 관계당국의 협조가 절대적이라는 지적이다. 최저가 입찰이라는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심사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들은 『IMF체제가 가져온 시장위축이 오히려 SI업계에는 덤핑수주의 벽을 깨는 체질개선의 보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내년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