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I업체들이 고가의 음성처리보드로 때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최근의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CTI솔루션업체들이 핵심 원부자재의 허약한 국산화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CTI는 컴퓨터와 통신을 결합해 콜센터, 헬프데스크 등 다양한 솔루션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유망기술이다. 지난 90년대 초반 국내에 선보이기 시작한 이래로 시장규모면에서 2천억원, 관련업체만도 20여개사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정보통신분야의 다크호스다. 업체당 지난해에만 전년대비 50∼1백%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풍성한 수확을 올렸으며 올해에도 지난해 못지않은 결실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한파가 몰아치면서 CTI솔루션업체들이 외산 음성처리보드의 수입가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음성처리보드는 자동교환, 자동응답, 음성사서함, 음성전송 등 다양한 통신관련 부가서비스 기능을 구현할 수 있어 CTI솔루션 구축에 없어서는 안되는 핵심부품이다. 현재 전체 시스템 구축비용 가운데 20∼40%라는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음성처리보드의 기술력이 CTI솔루션의 전체 성능을 좌우할 정도로 다른 어떤 부품보다도 중요도가 높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음성처리보드의 국산화라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미국, 일본 등지에서 전량 수입해왔으며 IMF의 여파로 그 가격은 천정부지로 높아만 가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 11월에 개당 2백만∼2백50만원에 이르는 음성처리보드 수입가격이 최근에는 원화가치의 급속한 하락으로 3백만∼4백50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형편이다. 국선 4백80회선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1개 시스템을 기준으로 할 때 최소한 60회선급 8개 정도의 음성처리보드가 필요해 단순 계산해도 그 비용은 1억원 이상을 상회한다. 여기에 CTI솔루션 구축을 위해서는 평균 10개 이상의 시스템이 필요해 10억∼15억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물론 그 가격은 중소업체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실정이다.
최근 달러당 환율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다소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CTI업체들에겐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업계에서 음성처리보드 국산화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허약한 기술력과 만만치 않은 투자비용을 들고 있다. 한마디로 중소업체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CTI업체들이 감당하기에는 덩치가 큰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들 업체는 내심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등 대기업들이 나서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도 시장성을 들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1천억원 내외의 국내시장을 보고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는 다소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성처리보드는 비록 1,2회선 정도의 소용량이지만 국내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할 정도로 기반기술은 확보돼 있어 이제는 한번 시도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지금까지 호황을 구가한 CTI시장의 주변환경 덕에 핵심 원부자재의 국산화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IMF의 한파를 계기로 핵심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국산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번 IMF한파로 겪은 어려움을 교훈삼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쫓기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공동개발 형태로라도 나서야 할 때라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CTI업계에서는 국산화를 통한 값싼 부품의 수급이라는 가시적인 효과뿐 아니라 CTI의 기반기술 확보차원에서도 음성처리보드의 국산화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될 주요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강병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