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통신 특집] 「경쟁보다 협력」 대합창

「경쟁에서 협력으로」. 유선통신 서비스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한국통신, 데이콤, 온세통신 등 유선통신 3사가 무인년 새해를 맞아 경쟁보다는 「협력」을 합창하고 나섰다. 국내 통신시장의 대표적인 견원지간이었던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지난 연말 「공동광고」라는 깜짝 이벤트를 펼치면서 「협력」은 유선통신 업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동안 정부의 경쟁확대정책과 신규 사업자들의 시장진입 전략이 맞물려 경쟁 일변도의 시장쟁탈전을 펼쳐왔던 유선통신 사업자들이 경쟁보다 협력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것은 이동통신의 급성장에 따라 「기본통신」으로서 유선통신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과 IMF충격으로 수익성이 급전직하하고 있는 위기상황에 따른 것이다. 우선 지난 연말을 전후해 한국통신, 데이콤, 온세통신 등 유선통신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요금인하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92년 데이콤의 국제전화 시장진입과 96년 시외전화 시장진입, 97년 10월 온세통신의 제3국제전화 서비스 개시 등 경쟁이 한 단계씩 확대될 때마다 요금인하경쟁의 회오리 바람에 빠져들었던 유선통신 업계가 이제는 끝이 안보이는 요금경쟁을 그만둬야 한다는 상황인식을 갖게 됐다.

환율폭등의 피해를 심하게 입고 있는 국제전화 부문은 그 중에서도 발등의 불이다. 이에 따라 3사의 협력은 가장 먼저 국제전화 부문의 요금인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연말의 환율폭등은 데이콤이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는 최대 원인이 될 정도로 국제전화 사업자들을 강타했다. 특히 아직까지 착신콜을 배분받지 못하고 있는 온세통신에는 엄청난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한국통신은 이같은 피해의 70%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에 따라 달러당 원화환율이 아직까지 1천7백∼1천8백원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국제전화 사업자들의 요금인상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비화되고 있어 조만간 일부 정산적자국을 대상으로 한 발신전화요금의 상당폭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갑작스럽게 현안으로 부상한 환율문제가 아니더라도 유선통신 사업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위기상황은 이동통신 시장이 매년 수십 내지 수백%씩 급성장하고 있는 동안 유선통신 시장은 정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 시내, 시외, 국제 등 유선통신 서비스 시장은 6조9천7백16억원 규모를 형성한 것으로 추산된다. 6조7천7백27억원 시장을 형성했던 96년에 비해 금액기준으로 2.9%에 불과한 성장률을 보인 데 그친 것이다.

부문별로 시내전화는 3조5천7백80억원으로 전년대비 4.6% 신장됐으나 시외전화는 한국통신 2조3백22억원, 데이콤 1천7백억원 등 총 2조2천22억원으로 전년대비 0.1% 가량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국제전화는 한국통신 9천37억원, 데이콤 2천7백80억원, 온세통신 1백억원 등 총 1조1천9백17억원의 시장을 형성해 전년대비 3.8% 정도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도 유선통신 시장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한 정도에서 정체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망이다. IMF한파로 인한 경기침체까지 감안하면 마이너스 성장까지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유선통신 서비스 시장규모가 전반적인 정체현상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화 가입자 증가에도 불구하고 요금이 지속적으로 인하돼왔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전화에서 이동전화 및 무선호출로의 전화가 시외전화 매출에 잡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동통신의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외전화 시장규모가 감소하는 현상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통신 자료에 따르면 90년대 들어 시외전화요금은 74%, 국제전화요금은 44%가 인하됐다. 시외, 국제전화요금 인하는 과거에는 시내전화요금 인상에 대한 보전측면이 강했으나 경쟁이 도입된 이후에는 사업자간의 요금인하경쟁이 불붙으면서 제살을 깎아먹는 과잉경쟁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이같은 상황때문에 유선통신 사업자들은 요금인하경쟁이 업계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경쟁보다는 협력에 무게를 둘 것으로 전망된다. 더 나아가 유선통신 사업자들은 단지 3사간 요금경쟁을 자제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이동통신 서비스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보다 적극적인 협력체제 구축에 나설 전망이다. 이는 유선통신 사업자들의 공동마케팅은 물론 접속료 협상 등 유, 무선 사업자간의 이해다툼이 발생할 경우 유선통신 사업자들이 공동보조를 취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유선통신 업계는 『국가사회의 정보화를 촉진하기 위해 유선통신 인프라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하며 이를 위해 통신서비스 소비행태가 무선 위주로 흘러가는 것을 지양하고 국가차원에서 무선부문이 유선부문을 보조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유선통신 사업자들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유선통신 서비스 시장 내에서의 쟁탈전은 올해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통신은 최근 단행한 조직개편을 통해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슬림화한 대신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선 영업조직을 대폭 강화, 벌써부터 경쟁사를 긴장시키고 있다. 부문별 영업조직을 하나로 통합한 한국통신 마케팅본부는 「경쟁상황에서 적정한 시장점유율이란 없다」며 최대한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천명하고 있다. 시내, 시외, 국제전화를 패키지로 묶은 번들상품 전략과 고객요소별로 마케팅 전략을 세분화한 표적시장 공략정책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수익성도 최대한 확보해낸다는 전략이다.

데이콤도 현재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는 시외전화 시장점유율을 상반기중에 15%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입체적인 영업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며 온세통신도 현재 8%인 국제전화 시장점유율을 13%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

더욱이 올해 말부터는 온세통신이 시외전화 서비스를, 하나로통신이 시내전화 서비스를 새로 시작하고, 회선임대 사업자들의 영업이 본격화되며 시외전화 및 국제전화 회선재판매 사업과 구내통신사업, 인터넷폰, 콜백 국제전화 등 별정통신 사업이 올해부터 전면 허용됨에 따라 국내 유선통신 서비스 시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층 복잡한 구조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올해 유선통신 시장의 최대 이슈는 하나로통신의 시내전화 서비스 개시다. 모든 통신서비스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인 시내전화 사업의 경쟁도입은 국내 유선통신 시장구조를 뿌리부터 변화시키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나로통신은 초고속 멀티미디어 시내전화 사업자를 지향하고 있다. 당초 한국통신에 비해 저렴한 요금을 계획했던 하나로통신은 요금경쟁보다는 차별화된 통신서비스 제공에 더욱 역점을 두는 쪽으로 사업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구리 전화선에 의한 기본적인 음성전화 서비스보다는 무선가입자망(WLL), 케이블TV망, 광케이블 등 다양한 가입자망을 바탕으로 ISDN, 지능망,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울 예정이다.

이처럼 국내 유선통신 시장은 올해 안에 시내전화를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경쟁구도의 골격이 짜여지고 별정통신 사업의 영향이 기간통신 사업자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미치는지도 판가름날 전망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유선통신사업은 WLL, 디지털가입자회선(xDSL) 등 새로운 가입자망 기술이 속속 상용화되고 케이블TV망의 전화망 응용가능성이 검증되며 한국통신의 아날로그 시내교환기가 디지털 교환기로 교체되는 등 98년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을 전망이다.

WLL은 하나로통신이 가입자망 구축의 한 축으로 삼고 있으며 한국통신은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의 올해중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케이블전화는 하나로통신의 시내전화망에 한전의 케이블TV망이 채택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이같은 신기술들의 등장은 기술국산화를 통한 관련 장비산업의 육성에도 기여하는 것은 물론 21세기 정보화의 인프라인 가입자선로의 다원화 및 경제성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