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SI업계 덤핑수주 근절돼야

최근 시스템통합(SI)업계에서 덤핑수주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올해 공공 및 민간부문의 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덤핑수주야말로 SI업계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행위가 될 뿐만 아니라 공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 30% 안팎의 고성장세를 구가해 온 SI업체들이 최근들어 제살깎아먹기식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IMF의 직, 간접적인 압력으로 공공기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위축 및 이에 따른 공공 SI물량 급감, 기업들의 전반적인 SI투자 연기 및 취소 등 경영환경이 크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국내 SI시장 규모는 지난해 5조8천억원대보다 10~20% 정도 감소할 것이란 게 관련업계의 추정이지만 일부 시장조사 기관의 예상을 보면 올해 국내시장 규모가 전년대비 거의 30~40% 정도 크게 줄어들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벌써부터 환율급등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그동안 추진해 온 전산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연기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으며 특히 외국산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일부 프로젝트의 경우 프로젝트 추진계획 자체를 포기할 움직임이어서 올해 시장규모는 상당규모의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처럼 SI업계 전체가 경기침체 장기화와 채산성 악화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마당에, 덤핑수주는 관련업계가 생존할 수 있는 마지막 근거를 말살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덤핑수주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제 살을 깎아먹는 행위」이며 SI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켜 신기술 개발이나 대외 경쟁력강화의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SI분야는 일감이 적은데 비해 서로 맡겠다고 입찰에 참가하는 업체수가 많다보니, 헐 값을 제시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대형 공공 및 민간 프로젝트의 수주를 둘러싸고 사업 참여업체간에 후유증이 흔히 발생했다. 특히 수주물량이 클수록, 경쟁이 치열할수록 잡음이 증폭되어 왔다.

SI업체들의 이같은 덤핑수주가 가능했던 것은 이번 「희생」으로 다음의 더 큰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입찰관행이 큰 몫을 했다. 구조적으로는 그동안 모그룹에서 나온 수주물량의 대가로 인력관리비를 포함하는 조건들을 달아 최대 1.6~1.9배까지 받는 등 그야말로 짭짤한 내부장사를 해온 것도 한 요인이 됐다. 결국 계열사들이 밀어주는 돈으로 공공시장의 적자 폭을 메워나간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덤핑수주는 정보시스템 부실화의 근본원인이 된다. 이로 인한 무형의 피해를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결코 싸지 않다. 발주자 역시 덤핑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수주자는 손해를 본만큼 발주자에게 부담을 떠안길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98년이다. 그동안 마구잡이 인력확충을 꾀해온 SI업체들이 변동비라도 건져야 한다는 심정으로 올 한해 수주확보에 진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올해도 예년과 같은 덤핑수주 관행이 이어질 경우 이제 막 개화기에 접어든 SI시장의 질서왜곡은 물론 해당업체들의 생존자체가 의문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같은 덤핑수주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찰방식을 개편, 구매제도를 개선하고 가격보다는 기술력을 우선시하는 구매 관행이 정착돼야 할 것이다. 최저가 입찰이라는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심사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는 공공물량의 발주처인 관계 당국의 협조가 절실하다. 최저가 낙찰제를 고수함으로써 공공연히 덤핑을 유도하는 행위는 SI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앞장서서 SI업체의 수행실적을 공표하는 등의 방법으로 SI업체의 전문화를 유도하고 「소프트웨어 기술성평가기준」을 더 엄격히 적용해, 기술 위주의 낙찰자 선정이 이뤄지도록 사업환경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IMF한파가 몰고온 시장위축이 오히려 SI업계에는 덤핑수주의 벽을 허무는 체질개선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