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27)

여인이 욕실에 놓여있던 의자에 엉거주춤 걸터앉았다.

그대로 서서 사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난처했기 때문이었다.

짧은 치마. 사내는 다리를 꼬고 앉은 여인의 짧은 치마 속으로 드러난 속옷을 힐끔 쳐다보았다. 어쩔 수 없는, 가린다고 해도 도저히 가릴 수 없는 짧은 치마였다. 사내는 여자의 종아리와 장딴지, 그리고 다시 한번 여인의 치마 속 속옷을 힐끔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조로아스터가 말하는 빛의 개념은 타종교와 많이 다르오. 그들의 성전에는 늘 빛이 있었소. 불이었소. 그 빛은 단순히 선(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찾고자 하는 기쁨의 환희였소. 물론 거기에는 섹스가 주는 기쁨이 주요 요소가 되고 있소. 그 기쁨을 최대한 누리면서 절망과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불을 찬미했소. 그들의 선, 그들의 환희는 그 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소.』 사내는 다시 한번 여인의 아랫도리를 눈으로 더듬었다. 장딴지. 종아리. 어젯밤에 다 보았었다. 다 느꼈었다. 하지만 감춰진 것은 또 다른 흥미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사내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들이 만든 상징물 파라바하는 조로아스터의 총체적인 상징의 이미지였소. 선한 생각(Good Thoughts), 선한 말(Good Words), 선한 행동(Good Deeds)을 대변하는, 신과 인간 사이의 통신을 담당한다고 믿던 상징물이었소.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 감정들이었소. 하고 싶을 때하고, 그렇지 않을 땐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는 최고의 선(善)이었던 것이오.』 최고의 선(善)? 여인은 여전히 사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의 핵심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내의 이야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가 문제였다. 꼿꼿이 솟아오른 사내의 사타구니로 자꾸만 자신의 시선이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명에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서비스를 해주고 있지만 일은 일이었다.

남자의 알몸을 보면서 여인 스스로가 흥분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엔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강하게 자신을 원할 때도, 사내가 소리소리 질러대던 그때도 여인은 자신의 몸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여인은 어느 곳에 시선을 주어야 할지 모르고 한참 허공을 바라보다 사내의 얼굴에 시선을 멈췄다.

어젯밤 그가 이곳에 들어섰던 것도 지금과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발생한 맨홀 화재가 녹화되어 방송되던 밤 뉴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