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이스트먼 코닥, 대대적 구조조정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코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합니다.』

지난해 9월 말 이스트먼코닥의 존 피셔 회장겸 최고경영책임자(CEO)가 10만5천명의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통해 이같은 구조개편 방침을 발표한 지 20일 후 코닥은 97년 3/4분기 결산(7~9월)에서 37억7천3백만달러의 매출액과 순익 2억3천2백만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액은 그래도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9% 줄어든 데 그쳤으나 순익은 42%나 줄어든 것이다.

그후 코닥은 피셔 회장의 발표대로 전체 직원의 약 10%인 1만6천6백명의 감원은 물론 10억달러의 경비를 절감한다는 뼈아픈 자구책을 발표했다.

피셔 회장이 실적악화에 빠져 있던 코닥의 경영자로 온 것은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모토롤러에서 뛰어난 경영수완으로 스폿라이트를 한몸에 받고 있던 지난 93년. 피셔 회장 취임후 잘 나가던 코닥이 다시 부진에 빠지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은 디지털 관련사업의 부진이다. 그 적자액은 지난 한해만 약 4억달러로 지난 96년에 올린 순이익의 3분의 1에 이르렀다.

피셔 회장은 취임이래 디지털 관련사업에 투자를 집중해 왔다. 94년부터 96년까지 연구개발부문에 투입된 총액 28억2천2백만달러의 대부분은 디지털 관련사업에 들어간 지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개발부문은 일반 사진에 근접한 화질을 낼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 및 CD-R, 광디스크 등의 기록매체와 통상적인 렌트겐 장비로 촬영한 영상정보를 디지털화하는 기기 등이다.

코닥의 디지털사업 전략은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영상가공 등에서 더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의료기기 등 업무용 분야에서는 정보의 디지털화로 더욱 고기능화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 있었다.

그러나 지금 코닥의 디지털사업을 성공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코닥의 가장 큰 실수는 너무 많은 제품을 한꺼번에 일반소비자 시장에 투입한 것이다. 코닥이 이처럼 실패의 쓴 맛을 보게 된 것은 신규시장에 대한 성장기대감이 너무 컸던 점도 있지만 경쟁업체에 대한 견제상 한꺼번에 너무 많은 신규사업을 전개해 제품이나 서비스 관련부문이 실제 소비자의 수요와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 예로 미국의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일본(1백만대 규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연간 60만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코닥은 27만화소에서 1백만화소 이상에 이르는 카메라를 시장에 선보였다. 일반사진에 가까운 화질을 낼 수 있는 고급기종의 경우 미국에서 「베스트3」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보급기종 등 제품부문에서는 판매가격 하락 등으로 이익을 내기 힘든 상황이다.

코닥이 생각하지 못한 것 중의 하나는 디지털기기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구체적으로 나타내 그 즐기는 방법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었다. 또 일반 카메라에 비해 디지털기기는 소비자에게 아직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코닥은 그 난점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코닥이 발표한 재건책 중 디지털사업 부문은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코닥의 한 관계자는 『제휴나 합작으로 다른 회사와 협력하는 방법을 모색해 코닥 단독투자를 줄여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닥은 또 투자의 집중을 꾀할 계획이다. 특히 적자액이 큰 CD-R나 광디크스사업에서 철수할 계획이다. 이들 두 제품은 지난 96년까지만해도 상당한 이익을 올렸으나 지난해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품가격이 전년도의 절반수준으로 내려가 디지털사업의 손실액 가운데 60%에 달하는 2억4천만달러 규모의 대적자를 기록했다.

코닥은 이같은 축소책의 한편으로 앞으로는 최근 연간 50%의 고성장을 하고 있는 전문가용 디지털카메라 및 업무용 프린터 등 전문가용 시장을 겨냥한 신제품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피셔 회장이 발표한 이번 대폭감익에 따른 자구책은 디지털사업의 재조정 이외에 코닥 전체의 연구개발비를 연간 최저 1억달러씩 압축하고 1만6천6백명의 인원을 감축해 총 10억달러의 경비절감 효과를 거둬낸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피셔 회장에 있어 디지털사업의 재편 이상으로 어려운 대규모 인원감축을 어디까지 관철할 수 있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솔로몬 브러더즈의 한 분석가는 『코닥은 인원감축으로 연간 6억달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4억달러인데 이것도 본업인 필름, 인화지사업이 미국 시장에서 흔들리고 있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은 오랜 숙적인 일본의 후지사진필름이다. 후지사진필름이 미국 필름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감에 따라 지난해 코닥의 시장점유율은 기존의 75%에서 70%로 낮아졌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피셔 회장은 94년 취임이래 심혈을 기울여온 공장개혁 노력이 효과를 거두고 있어 여기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미국 각지에 있는 공장에서 불필요한 계층인식을 없애고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 생산라인에서 10인 이상의 팀을 감독하는 감독관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피셔 회장이 자구책으로 내놓은 일련의 대책은 코닥이 얼마나 빨리 안정궤도에 올라서냐는 문제와 함께 개인적으로 모토롤러에서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자존심 대결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