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바하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신이 준 선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오. 금욕, 금식, 고행은 파라바하가 가장 경멸하던 행위였소. 그 이유는 이러한 행위가 인간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악한 영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소. 또한 염세주의와 절망도 최대의 죄악으로 간주되었소. 하고 싶은 때 해야 하는 것이오.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하는 것이오. 그것이 그들에겐 선이었소. 최고의 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하던 사내가 시계를 한번 보고는 표정을 풀며 말했다.
『참, 지금 밤 뉴스 시간인데 텔레비전 좀 볼까요?』
『텔레비전이요?』
텔레비전. 사내는 어제도 지금과 같은 말을 똑같이 했었다. 뉴스 좀 보자고. 로션을 바른 사내의 등 위에서 벗은 몸으로 보디 마사지를 하던 여인에게 서울 광화문 땅속에서 불이 났다는데 궁금하다며 뉴스를 보자고 했었다. 무엇하러 온 사람인가. 여인은 거품이 허옇게 묻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무엇하러 온 사람인가를 생각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혼자서 떠들다가는 느닷없이 뉴스를 보자는 이 사내, 무엇하러 이곳에 온 사람인가.
여인은 반사적으로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두덩에 달라붙은 속옷이 드러났다. 사내의 시선은 이미 여인의 그곳으로 정지되어 있었다.
여인이 텔레비전 전원을 켰다.
불.
광화문 네거리 맨홀에서 솟구치는 불꽃이 화면 가득 보였다. 어젯밤 그 화면이 다시 방영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어 현재의 복구상황이라며 현장의 상황이 화면으로 나타났다. 환하게 불을 밝힌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서 복구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과, 맨홀 속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통신 케이블을 접속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가씨, 아가씨는 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불이요?』
『그렇소. 훨훨 타오르는 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글쎄요∥』
『혹시 프로메테우스에 대하여 알고 있소?』
『......』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 준 신이요.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바위산에 거꾸로 묶인 채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소. 그 표정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표정이오. 하지만 환희의 표정이기도 하오. 그 표정에서 볼 수 있듯이 불은 파괴요. 동시에 창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