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33)

돈이란 무엇인가.

남자는 손끝으로 느껴지는 돈의 감촉을 즐기며 다시 한번 지난 하루의 일들을 떠올렸다. 은행문을 열기가 무섭게 시작된 현금 인출작업. 이미 만들어놓은 1백개의 통장에 입금된 5천만원씩의 돈을 현찰로 찾는 작업이었다. 똑같은 금액이었다. 입금일자도 똑같았다. 은행이 위치한 순서대로 준비된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작업이었다.

작업. 은행에서 통장에 입금된 돈을 찾는 것을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오늘 남자가 하루종일 점심도 거른 채 한 일은 분명히 작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서울 중심부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통장에 입금된 5천만원씩을 현찰로 인출하고, 그 인출한 돈을 기다리고 있는 안경 낀 사내의 봉고차에 싣는 일을 반복한 것은 단순한 작업일 뿐이었다.

안경 낀 사내는 치밀했다. 한치의 시간적 착오 없이 남자가 인출하여 가지고 나오는 돈을 받아 차에 실었다. 준비해주던 번호표도 정확했다. 조금도 기다리지 않도록 창구의 순서에 늘 맞추어져 있었다.

50억.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돈. 남자는 한평생을 살아도 만져보지 못할 많은 돈들은 단 하루에 만져본 것이었다. 50억. 그 중에 10분의 1의 돈이 지금 자신이 몰고 있는 차에 실려 있는 것이다.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측으로 펼쳐져 있는 바다가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검게 빛났다. 바다 멀리에서 어선의 불빛이 깜박거렸다.

날이 새자마자 남자는 저 서해바다 위에 있게 될 것이다. 며칠만 더 지나면 자신의 고향 연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안경 낀 사내는 이야기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최고의 선(善)이라고. 그것이 파라바하의 꿈이라고.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 안경 낀 사내가 이미 모든 일을 마무리지어놓았다. 태안 7반도 끝에도, 중국 단동지역에도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직접 확인도 했다. 준비해준 순서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한 일은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준 것뿐이지만 그 작업의 중요성은 인식할 수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돈. 때문에 자신의 위험성도 그만큼 컸을 것이다. 그에 따른 보상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지금 자신의 손끝으로 만지고 있는 것이다.

멀리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남자는 차의 속력을 줄였다. 검문소가 있는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