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35)

손에도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 되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이곳만 잘 통과하여 준비되어 있는 배에 현금을 싣기만 하면 된다.

남자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려였다. 일상적인 검문일 뿐이었다. 경찰관은 버릇처럼 차안을 한번 쳐다보고는 가라는 표시를 했다. 그래도 남자의 등줄기로 줄줄 진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갈증.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가속을 시키며 남자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등줄기뿐만 아니라 핸들을 잡은 손도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50억원을 은행에서 현금으로 인출하면서 하루종일 느꼈던 긴장감이 검문소를 지나면서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했다.

남자는 차의 오른쪽 방향표시등에 신호를 넣었다. 차 속도를 줄이고, 오른쪽 길가로 세웠다. 자판기. 남자는 캔 커피 하나를 뽑아 한꺼번에 들이켰다.

시원했다. 남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연기를 폐 속 깊숙이 빨아들였다. 음료수보다 담배가 더 피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남자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총총했다.

달은 없고 별만 총총했다. 그 하늘로 고향의 하늘이 겹쳤다. 별을 헤아리는 밤.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만주의 하늘에도 이곳처럼 별이 총총 빛나고 있을 것이다.

이맘때면 백두산 천지 부근에는 이미 눈이 내렸을 것이다. 들판의 곡식은 추수가 끝났고 높지 않은 산에는 붉은 빛으로 단풍져 있을 것이다.

중국의 만주지방에서 한국은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한번 나오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미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 많았다. 남자도 마찬가지. 그때 안경 낀 그 사내를 만났던 것이고, 이제 그를 통해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남자가 몇 모금의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는 중에 뒤에 따라오던 몇 대의 차량이 지나쳤다. 그 뒤로 더 이상의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담배 불을 끄고, 남자는 차안으로 들어서 액정모니터를 살폈다. 현재 위치에서 조금 더 지나 길게 뻗어 있는 방조제 표시가 나타나 있었다.

방조제. 우회전하자마자 헤드라이트를 받고 나타나는 긴 방조제가 나타났다. 왼쪽은 민물호수. 오른쪽은 바다.

힘껏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숫자로 표시되는 속도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앞의 차들도 시계를 벗어나 있었고 뒤쪽에도 차량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더욱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