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성방송시장 개방과 통합방송법

세계적인 미디어그룹인 뉴스코퍼레이션사의 루퍼트 머독 회장이 데이콤과 합작으로 디지털 위성방송을 내년 7월부터 상용화하기로 해 국내 방송시장의 대대적인 구조변혁이 예상된다.

뉴스코퍼레이션그룹의 한국상륙은 기존 공중파TV와 케이블TV 외에 위성방송으로 삼분된 국내 TV방송 구도에 디지털 위성방송을 추가, 4자 구도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위성방송 실시를 위한 근거법 마련이 차기정부의 1백대 과제에 포함된데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도 지난 13일 머독 회장과 만나 『차기정부는 외국자본에 대한 제한을 많이 완화해나갈 것』이라며 『머독 회장이 한국에서 사업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돕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이제 한국 방송환경의 변혁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통합방송법이나 방송정책이 갑자기 닥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외국자본 유치」라는 경제논리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동안 방송계의 거듭된 논의를 무시한 채 표류해온 통합방송법이 외국자본의 국내 위성방송 참여선언으로 머독의 국내진출을 보장하는 쪽으로 손질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새 방송법 제정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온 대기업 및 신문사의 진출허용 문제가 더이상 쟁점화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미디어재벌이 한국시장에 진출할 경우 대기업 및 신문사의 참여를 제한한다는 것은 더이상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공급사업자(PP), 종합유선방송국(SO), 전송망사업자(NO)의 교차소유 및 복수SO(MSO), 복수PP(MPP) 등 케이블TV 관련조항도 전향적으로 수정될 전망이다.

루퍼트 머독의 한국진출은 이제까지 문을 굳게 닫았던 국내 방송시장의 사실상의 전면개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데이콤과 루퍼트 머독의 합작은 형식적으로는 새 방송법이 제시하고 있는 「최대주주 30%, 외국인 지분한도 15%」라는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해외자본 유치가 자유로워지는 상황에서는 해외자본 출자한도를 15%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해질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케이블TV PP에 30∼50%의 한도를 적용해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 쿼터제의 폐지 및 외국사업자에 대한 채널운영권 허용, SO시장의 개방을 요구했고 미국 CNN이나 TCI 등도 별도채널을 통해 유사한 요구하고 있다. 최근 케이블TV협회의 경우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외국인 투자한도를 30%까지 늘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국내 방송시장에서 과연 80개가 넘는 위성채널이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우리 방송의 채널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타당성 검토절차 없이 채널이 대폭 늘어날 경우 심각한 과포화상태에 이르러 방송사업자들의 경영악화는 물론 시청자들의 문화적인 혼돈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부작용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따라 사활을 건 채널경쟁 구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민방이나 케이블TV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케이블TV PP는 혁신적인 제도개선 및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뒤따르지 않는 한 고사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아무튼 이번 머독의 한국 위성방송시장 참여결정은 국내 방송환경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위력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제는 우리의 방송시장도 세계화를 지향하면서도 자체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전향적인 구조개혁을 해야 할 때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자율적인 접근이 아니라 타율에 의한 강제적인 성격을 띨 때는 국민적인 수용태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수 방송정책 입안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차기정부는 우리의 방송정책이 주체적인 비전 속에서 세계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방송환경 전반을 철저히 검증하고 해외자본의 위성방송 장악이 미칠 영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새 통합방송법 등 관련제도에 적절히 반영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