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술동향] 일, 자판기 네트워크화 앞서간다

자동판매기의 네트워크화가 최근 일본에서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

단순히 캔 음료 등을 판매하는 일반적인 자동판매기에서부터 다소 복잡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수형 자동판매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류의 자판기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관리와 운영이 간편해지고 있는가 하면 이를 이용한 무인 편의점까지 등장해 새로운 사업 형태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특히 이같은 네트워크화는 최근에는 통신 위성과 종합디지털통신망(ISDN)까지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향후 자동판매기는 이들 위성 및 고속통신망의 발전 속도와 맞물려 앞으로 더욱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에게는 아직은 생소한 「프린트 클럽(프리쿠라)」이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자판기의 네트워크화 사례. 촬영한 사진을 그 자리에서 스티커로 만들어 주는 프린트클럽은 지난 95년 7월 최초로 선보인 이후 여자중고생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자동판매기의 일종이다. 프린트클럽은 당초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스티커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됐으나 현재는 배경에 재미있는 그림이나 유명배우 만화캘릭터 등을 넣어 찍을 수 있는 형태로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엄청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따라서 향후 프린트클럽 사업의 성공 열쇠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배경 화면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해 적절히 설치하느냐에 있다고 볼 수있다.

바로 이러한 요소가 프린트클럽 자판기의 네트워크화를 추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프린트클럽 기기를 제조하는 오락기기업체 아틀라스社는 이 기기의 네트워크화를 위해 라디오 방송국인 에프엠도쿄 및 일본IBM과 제휴해 통신위성을 이용, 사진의 배경 데이터를 각각의 자판기에 전송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프린트클럽의 배경데이터를 갱신하기 위해서는 롬 카트리지라는 반도체를 일일이 교환해야했다. 그러나 실제로 프린트클럽 자판기는 전국에 수만대가 설치돼 있어 일일이 이를 갱신하는 작업이 매우 번거로울 뿐 아니라 유행하는 배경 화면의 전환 속도 또한 매우 빨라 적어도 1개월에 1번씩은 배경화면을 추가해야하기 때문에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아틀라스사는 네트워크화를 통한 통신위성의 활용으로 이같은 번거로움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각각의 자동판매기를 통신 회선으로 연결해 이용자가 어떤 배경을 가장 선호하는 지와 배경에 따른 매출 변화 등의 정보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프린트클럽이 자판기의 일종임은 확실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판기의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품, 음료 자동 판매기 등도 이러한 정보를 송수신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움직임이 일본에서는 매우 활발하다.

일본에서 자동판매기의 이용량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하네다공항터미널의 모든 자동판매기에는 각 기기마다 무선기기가 설치돼 있어, 이를 통해 어떤 음료가 얼마나 팔렸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상품이 적게 남아 있을 경우 단말기를 통해 곧바로 이를 확인할 수 있어 사전에 품절을 방지할 수 있다. 이른바 판매시점정보관리(POS)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자동판매기 사업의 가장 큰 에로사항인 고장과 그 원인도 어느 정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어 고장에 대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하네다공항터미널의 자판기는 모두 일본코카콜라그룹이 전담해 운영하고 있다. 원래 이 공항내 자판기는 복수의 회사가 각각 독자적으로 설치, 운영해 왔는데 코라콜라가 이를 모두 전담하게 된 것은 네트워크를 활용한 효율적인 자판기 운영 시스템이 공항관리회사에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공항은 많은 유동인구가 있기 때문에 상품의 회전이 빠르고 이 때문에 품절상태가 자주 발생한다. 코카콜라는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공항에서 상품을 보충하는 청량음료를 쌓은 카트가 여기저리 돌아다니면 공항 이용객에 방해가 되므로 판매정보를 항상 파악해 품절을 방지함과 동시에 필요한 양 만큼만을 적재해 이동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공항관리회사를 설득했다.

일본코카콜라그룹은 현재 하네다공항 뿐 아니라 JR 나고야역과 시즈오카역, 신쥬쿠 「마린타워」, 도쿄만의 인공섬 「텔레컴센터」, 요코하마 「랜드마크타워」 등 새로운 대규모 역과 빌딩 등에 자판기 POS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자판기 네트워크화에 가장 열성을 보이고 있다.

자판기 생산업체들도 최근 POS기능이 장착된 신형자판기의 개발에 힘쓰고 있다. 산요전기와 후지전기는 최근 PHS(간이휴대전화)를 이용한 POS 대응 자판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구조는 하네다공항의 자판기와 거의 흡사하지만 판매정보를 PHS를 이용해 담당 영업소로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업체 관계자들은 자판기 POS의 수요가 앞으로 자판기시장의 20-30%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자판기 네트워크화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인터콤사는 제품별 매출 동향 등 자판기의 판매정보를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출시해 놓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PHS를 이용해 인터넷을 통해 음료 자판기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소프트웨어적인 고장을 수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POS대응 자판기와 네크워크화 등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일본 자판기업계 3위인 기린 비버리지社 관계자는 『자판기 본체 가격 자체가 높아질 뿐 아니라 통신회선의 사용료 등 관리원가도 높아진다. 또 정보시스템도 정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투자대 효율비에 의심이 간다』고 밝혔다. 또 업계 2위인 산토리푸드社도 「현재 실험 운영은 하고 있으나 본격적인 도입은 아직 미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코카콜라 관계자들은 『자판기 보급대수가 최근 10년동안 5백만대 이상으로 늘어났다』며 『이러한 치열한 경쟁 체계 속에서 설치의 열쇠를 쥐게 되는 것은 품절과 고장이 적은 운영력』이라고 주장했다. 즉 보급률 확대로 설치 장소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속에서는 설치장소를 제공하는 사업자들도 관리와 운영이 편리한 첨단 자판기가 아니면 설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이같은 자판기 고지능화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판매 정보와 점내 상황을 원격지에서 관리하는 「무인 편의점」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

재팬에너지계열의 편의점 체인인 「AMPM재팬」이 이미 지난 96년 9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델리스」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무인 편의점.

「델리스」는 편의점의 주요 상품인 도시락을 비롯해 과자, 음료, 잡지류까지 총 3백32 종류를 취급하는 이른바 거대 자동판매기로 볼 수 있는데, 은행의 CD기 처럼 TV화면에 표시된 선택버튼을 눌러 상품을 선택하면 원하는 상품이 바로 제공된다.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상품 가격도 약 5-10% 싸다. 특히 현재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의 경우 아르바이트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같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 또 소위 몫은 좋으나 공간이 비좁은 경우 무인 편의점은 더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무인 편의점 운영이야말로 자판기 네트워크화의 이점이 그대로 집약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전성이라는 면에서도 상해 강도사건은 발생할 여지가 없고, 2대의 카메라가 AMPM 본부와 연결돼 있어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 경비 회사에 곧바로 통보되기 때문에 도난 사건 등도 방지할 수 있다. 또 남아있는 상품이 적어지면 온라인으로 자동 발주하기도 하고 귀찮은 계산과 회계처리도 자동적으로 본부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설치운영자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된다.

이처럼 지금까지 상품이 나오는 단순한 상자였던 자동판매기는 네트워크화로 엄청난 변신을 도모하고 있어 인건비 상승 등을 배경으로 이러한 네트워크 자판기의 효과적인 활용이 기업 경쟁력 제고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심규호 기자>